나는 네가 따뜻한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매칭된 후원아동에 대한 후원등록이 완료되었으며 출금계좌에 자동이체가 등록되었다고. 며칠 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한 어린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나는 내가 태어난 날마다 이 세상에 슬픔으로 태어난 작은 존재를 응원하기 위해 베이비박스에 일정 금액을 후원 중이다. 베이비박스의 존재를 알고나서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몇 해동안 꾸준했다. 그리고 강아지를 입양한 뒤로는 유기 동물 구조단체에도 비정기적으로 소액을 후원한다.
이번에 디딤씨앗통장을 통해 후원하게 된 아동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는 전남 목포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13살 여자 아이. 디딤씨앗통장은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층 아동의 자립을 돕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개인의 후원이 컬래버레이션 된 프로그램이다. 내가 매달 5만 원씩 후원하면 정부에서 내 후원금의 2배인 10만 원을 아이 앞으로 적립해 주는 방식. 아이가 성인이 되어 학자금, 취업 훈련 비용이나 주거 마련 등의 이유로 돈이 필요할 때 이 자금을 직접 수령할 수 있다. 아이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앞으로 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그때까지 후원을 멈추지 않는 것을 다짐했다.
어린 시절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읽었을 때 개인적으로 결혼이라는 결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누군가 든든한 어른의 보호 아래 주디가 멋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내가 커서 엄마가 되면 나도 그런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 아이를 돌봐야지 생각했다. 비록 일그러진 홍길동의 만행으로 이번 생에 출산의 꿈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졌지만 내가 출산하지 않더라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아이의 양육에 기여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저씨, 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있어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친절과 공감과 이해심도 생겨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상상력을 키워 줘야 해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은 상상력의 싹만 보여도 즉시 잘라 버려요. 그곳에서 장려하는 자질이라곤 오직 의무감뿐이지요. 저는 아이들에게 '의무'라는 단어도 알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아이들은 뭐든지 의무감에서 하면 안 돼요.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해야 해요. (키다리 아저씨 중)
상상력이 결여된 홍길동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경직된 사고를 가진 어린 홍길동에게 '아이다움'을 요구하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음모론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가끔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나와 홍길동 사이에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홍길동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채 태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저 엄마라는 이유로 나 혼자서 아이를 끝까지 책임졌을까.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와 다양한 내면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홍길동이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아빠 역할을 해낼 리가 만무할 텐데, 그럼 독박육아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를 닮은 아이에게 어떻게 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쳤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 역시 경험하지 않은 부분이라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고작 내게 아이라도 없다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사랑을 끊임없이 퍼붓다가 결국 내가 고갈돼 죽었을 것이라는 비관과 두려움이 앞선다.
나는 내가 후원하는 이름 모르는 아이가 다정한 어른으로 자라길 희망한다.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고 힘들어도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기를. 작은 것에 끊임없이 기뻐하고 주변에 사랑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그때까지 나도 숨어서 너를 응원할게.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의 디딤씨앗통장 후원이 궁금한 어른들은 한 번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