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연주 May 13. 2024

연주님 남편 자랑 좀 해주세요.

망한 결혼, 없는 남편, 나 혼자 올린 가짜 결혼식 썰 푼다.


제 남편이요? 에이 그런 걸 뭐 자랑해요. 자랑할 게 뭐 있어요.


그래도 신혼이시잖아요. 저 사실 요즘 결혼에 대해 고민이 많거든요.


어떤 거요?


그냥 이제 서로 만나온 기간도 있고 나이도 슬슬 차고 하니깐 결혼 생각이 드는데 막상 결혼을 생각하니깐 이 사람의 거슬리는 점이나 단점 그런 것들이 좀 고민되더라고요. 그래서 연주님 신혼 얘기 들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전 진짜 할 말이 없어요. 저는 제가 신혼인지 솔직히 모르겠거든요. 저희 결혼식이 한 번 밀리면서 코로나 기간이기도 했고 이래저래 결혼 전에 동거한 기간이 1년 정도 있거든요. 차라리 그때가 신혼이었죠. 알콩달콩 티격태격 그런 것들은 그때 다 했어요.


아 그 기간 덕분에 연주님이 이렇게 한국에 먼저 들어오실 수 있었나 보네요. 남편분이 그래도 연주님 많이 보고 싶어 하지 않으세요? 연주님 예쁘셔서 다른 남자들이 들이댈까 봐 걱정할 것 같은데! 저는 저도 질투가 많은 성격이고 애인도 질투가 많은 편이라서요.


제 남편은 로봇 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감정 표현도 없고 보고 싶단 말도 안 해요. 아마 안 보고 싶어 할 것 같은데ㅎㅎ 제 남편 평소에도 무뚝뚝하고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일장일단이 있어서 늘 한결같고 믿음직스럽고 자기만의 루틴이 있어요. 집-회사-운동-저 이런 루틴이요. 연애 초반에 '출근 잘했냐, 밥은 잘 먹었냐' 이런 연락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서운한 마음에 '오빠는 나한테 그런 거 안 궁금해?' 물어봤더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 먹는 밥, 매일 하는 출근인데 무슨 큰일 났으면 네가 먼저 연락을 했겠지.'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이때 동료들은 헐~!이라고 했다.) 근데 막상 사귀고 익숙해지니깐 자기 루틴에 저를 넣더라고요. 잔잔한 일상이라서 좋아요. 싸울 일도 없고요. 결혼은 그런 것 같아요. 설레는 것보다는 안정감, 믿음, 신뢰 그런 거요. 가족이 되는 거니깐요.


연주님 저 이런 말 들으면 진짜로 결혼하고 싶거든요? 근데 생각할수록 괜히 머리만 복잡하고 고민만 많아져요. 요즘 그래서 혼자서 답답해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때 결혼은 '저 사람이랑 결혼하면 괜찮을까?'를 고민하는 거보다 '내가 결혼하면 괜찮은 사람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사람은 안 바뀌는데 저 사람이 바뀌길 기대하고 서운해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바뀔 수 있는지 물어봐야 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내 기대를 다 포기할 수 있겠냔 말이에요. 저는 그래서 다 포기하고 살잖아요. 그래도 제가 커리어 때문에 한국 간다니깐 쿨하게 보내준 건 고마워요.


와 명언 같아요. 역시 결혼 선배 얘기 새겨듣고 저를 한 번 돌아볼게요. 저 사람이 괜찮은가를 생각하지 말고 나는 괜찮은가를 생각할 것. 오 이거 꼭 기억해 놔야지.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숨죽여 울었다. 오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다.


이전 15화 이틀 동안 드라마 스무 편 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