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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May 14. 2024

하늘이 너무 파래서 눈이 시려

새장에 갇힌 새도 아닌데 왜 자꾸 하늘을 보면 눈물이 날까요?



기분파가 아니라 날씨파였던 나는 이제 새파랗게 파란 하늘을 봐도 더 이상 신이 나지도 콧노래를 흥얼거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눈이 시리듯 따끔따끔해진다.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는 동안 잠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아침부터 버스에서 창밖 파란 하늘을 쳐다보다가 내리는 정류장을 놓쳤다. 그렇지 않아도 증량했던 약을 다시 원래대로 내렸더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영 버겁다. 단약은 아직 꿈도 안 꾸지만 감량조차 시기상조였을까.


우울증 환자가 되기 전의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살았었는지 점점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의 반짝이던 나는 어땠는지 내 모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찬란했던 내 모습은 아득해진 먼 옛날이야기 같다. 이제 글 쓰는 것도 어렵다. 진전이라곤 하나 없는 이 상황에 매일 쓴다는 게 지치나 보다. 이런 지지부진한 글은 읽는 사람들도 분명 지겨울 것이다. 쓰고 싶은 게 생길 때까지 당분간 아무것도 쓰지 말까 생각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정함과 성실함은 내 무기다. 비교적 끈기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죽어서 없어졌다. 의식의 흐름대로 될 때까지 써야지.


오늘은 퇴근하고 병원에 갔다. 선생님이 물었다. "연주 씨 어떻게 지내셨어요? 상황에 변화는 있어요?"

"아뇨 없어요. 똑같아요." 선생님이 이젠 나보다 더 크게 한숨을 뱉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쥐덫에 갇힌 기분이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우선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우울증이 나를 잡아먹어버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


어차피 3년 간 연락 두절이면 소송 이혼을 할 수 있던데 나중에 홍길동이 이혼 필요해질 때까지 나부터 연락 끊고 해외로 뜰까. 친구에게 촌집 매매에 대해서 말했는데 친구가 연고지도 친척도 없이 여자 혼자서 시골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하늘은 저렇게 드넓은데 나는 한 평만큼 좁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있다. 오늘따라 하늘은 쓸데없이 파랗고 미세먼지까지 없으니 눈이 시려서 자꾸 눈물이 난다. 새장에 갇힌 새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조금만 더 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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