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연주 May 16. 2024

자아성찰을 하지 않는 사람

홍길동이 가장 두려운 건 자기 아버지가 아니라 진짜 자기 모습일 것이다.


자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는 요즘이다. '참나'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참나를 찾기 위해 수행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라는 말도 결국 말뿐인 껍데기고 생각일 뿐이니 개념화해서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구별하려는 마음을 갖는 건 어리석은 집착일 뿐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썼던 책에서 성숙한 사람은 자아성찰을 잘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계속 던지며 자기를 찾는 과정에만 매달리면 정신병 걸린다는 글이 생각난다. 나에 대해 탐구하는 마음을 가지되, 주위를 너그럽게 둘러보고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맥락이었다. 그 말을 계속 곱씹어보니 과연 참나, 진정한 자아란 고대부터 지금까지 현존하는 모든 철학자들이 증명해내지 못한 어려운 숙제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나는 자기를 단련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심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는 과정이 결국 큰 틀로 봤을 때 하나의 인생 같기도 하다. 자아성찰을 하며 끊임없이 반성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 자아성찰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실수를 인정하는 게 몹시 두려워서 평생 뒤만 바라보고 산다. 혹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며 그저 누가 등뒤를 떠밀어주고 자신은 거저 살기를 바란다.




내가 나의 치료자가 된 것처럼 스스로 자문자답을 해본다.


- 홍길동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 아마 자기감정을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해서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고 계속 남을 탓하거나 현실부정 내지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 연주 씨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 글쎼요. 제가 숙이고 들어와서 싹싹 빌면 마지못해 같이 사는 척은 해주듯이 굴 것 같아요. 깊은 속마음에는 이혼하기 싫은 감정이 있지 않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그게 또 트리거가 돼서 발작버튼 눌릴 거예요.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저를 깎아내리려고 더 안달 날 거예요. 아마.

- 왜 그렇게 생각해요?

- 진짜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하면 그만인 건데 지금 이혼 진행도 안 하고 잠수 탔잖아요. 만약에 제가 정말로 자기를 배신해서 뭐 바람을 폈거나, 돈을 빼돌렸거나 그랬으면 이미 뒤도 안 돌아보고 냉정하게 이혼했을 텐데요.

- 그럼 반대로 왜 연주 씨가 먼저 이혼 진행 안 해요?

- 저는 피습당한 것 같은 상처에서 아직도 허덕이고 있어요. 제가 먼저 나서서 이혼을 진행할 만큼 제 마음이 튼튼하지 않아요. 최대한 정신적으로 타격을 덜 입고 싶은데 이미 영혼이 뿌리째 뽑힌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제 마음을 계속 돌아보고 이 감정들을 소화시키는 능력이 어느 정도 충분해졌을 때요. 그리고 어차피 정상이 아닌 홍길동과는 대화가 안 되니 그의 부모 중 누구라도 제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당당히 제 할 말 할 수 있을 때요. 지금도 눈물이 너무 많아요.

-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더 안 좋아져서 제가 죽을 때 절대 혼자 안 죽을 거예요. 같이 죽을 거예요.

- 홍길동이 제일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누구일 것 같아요?

- 자기 아빠요.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두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자기 말을 안 들어주고 '내 말이 곧 법이야' 하던 아버지에게 상처가 깊을 것 같아요. 근데 웃긴 건 결국 자기가 아빠를 제일 많이 닮았거든요. 그러니깐 그게 결국 온통 자기혐오와 열등감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사실 모든 게 아버지 탓만은 아닌데. 그냥 탓하면 쉬우니깐 그런 거죠.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대상을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감정이다. 하지만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일단 정면으로 부딪혀서 어떻게든 소화시켜야만 자아가 망가지지 않는다. 거북한 감정을 피해버리면 소화되지 못한 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찌꺼기가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자리 잡고 뿌리를 썩게 만든다. 부모를 싫어하고 미워할 이유가 있다면 그래도 된다. 자식 버리는 부모도 있는 세상에 부모라고 무조건 사랑하고 존경해야 될 필요는 없다.


물론 아이에게 부모는 곧 하늘이자 세상의 전부라서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다 큰 어른이 되어서는 자아성찰을 하는 기회가 자주 필요하다. 잘못된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면 안타깝지만 그걸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뿐이다. 홍길동은 자기 아버지를 아무리 미워해도 결국 지금 그가 제일 미워하고 있는 건 아마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걸 자기만 덮어두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는 줄 알았겠지. 그래서 연애 시절 나한테는 자기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말 대신 그저 존경하고 대단한 분이라고만 내비쳤다. 차라리 그가 자기를 탐구하고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시간이 있었다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내가 대신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




불혹의 나이에 썩어빠진 어른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을 매일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지난 1년간 관찰한 홍길동의 병명이다.




작가의 이전글 출가하는 심정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