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법을 +1 깨우쳤다.
내가 먼저 되묻고 싶다. 이걸 알았으면 내가 결혼했을까. 다 알고도 결혼할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겠냐고.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홍길동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서 본인의 분노조절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했다. 그 분노는 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아닌 순전히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 회사 스트레스 등 외부에서 오는 모든 것들이었다. 과부하가 와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분노가 쌓이면 만만한 내게 고스란히 투척했다. 그에게 결혼이란 은연주라는 감정쓰레기통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게 됐을 뿐이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언성부터 높이며 윽박지르기는 당연하고 이러다 사람 패겠네 싶은 눈동자를 내게 들이밀며 쌍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사과는커녕 일언반구 없이 평온해진다. 한 번도 어제의 괴물 같았던 자기 모습에 대해서 변명을 하거나 설명을 하거나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화해를 하든 대화를 해보려고 먼저 말을 꺼내면 다 지나간 일을 왜 또 꺼내서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냐며 폭발했다. 너는 참 뒤끝이 있다고 넌 정말 지긋지긋해서 피곤하다고, 내가 좋게 넘어가준 건데 한 번만 또 말 꺼내면 헤어지자고. 자기 선택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먼저 결혼하자던 너의 눈물 섞인 그 결심과 선택은 왜 그리 쉽게 변한 거니?)
"너는 왜 화가 없어?" 옛날 연애 시절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나도 사람인데 설마 화가 없고 짜증이 없을 리가. 단지 그게 밖으로 표출되기 전에 이미 내 안에서 소화가 다 됐다. 화는 있지만 굳이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에 가까울 것 같다. 나는 화의 이유를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능했다. 내 감정에 셀프공감을 잘하는 편이었다. '엄마가 또 죄책감을 주입시키면서 내 장녀병을 공고히 키워주는구나.' 회사에서 별 거지 같은 이유로 터지는 날에는 '그래 원래 남의 돈 버는 게 쉽지 않지. 쟤는 오죽 불행하면 사회 나와서까지 저 지경일까. 마음 같아선 들이박고 싶은데 내가 고작 월급 몇 푼과 사회생활 평판이 더럽고 치사해서 꾹 참고 있구나.' 히스테리 부리는 팀장을 보며 나는 절대 쟤처럼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지 결심하기도 했다.
내 상황을 어디 가서 말하지도 않았지만 남들이 알았을 때 예상되는 몇 가지 반응들 중 벌써 내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있다. "결혼 전엔 그걸 몰랐어? 3년이나 만났는데 몰랐어? 동거도 했는데 몰랐다는 게 말이 돼?" 마치 내가 모르는 게 잘못이라는듯한 말투.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듯한 반응. 그래서 더욱 말을 삼가게 된다. 속 시끄러운 세상 내가 닥치면 그만이야. 하지만 세상을 등지고 앉아있는다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할 세상이라면, 마주 봐야 할 세상이라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두 눈 똑바로 쳐다보고 대답해 줄 것이다. "왜? 아 하긴, 너라면 어차피 알았어도 했을 것 같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 뜻밖의 능력이 생겼다. 사람 보는 법을 더 정교하고 세심하게 깨우쳤다. 자기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함부로 자부하거나 세상일을 다 안다는 그 오만으로 구업을 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공감능력은 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