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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May 20. 2024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투사

홍길동이 말하는 이혼 사유를 돌아보며 그의 세계 엿보기

우리는 결혼식이 끝난 주에 해외이사를 했고 이사 다음날 홍길동 먼저 출국하는 강행군 일정이었다. 왜 그렇게 일정을 밭게 잡냐고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어차피 자기 혼자서 이사 업체를 계약하고 내게 나중에 통보했다.




결혼식이 얼마나 정신없는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결혼식이 끝나고 각종 정리와 정산, 빌렸던 물건들 반납, 축하해 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 돌리기만 해도 이미 지쳐있었고 몸살이 났다. 하지만 지칠 새도 아플 겨를도 없었다. 해외이사를 위해 이삿짐을 분류하고 당근하고 버리는 일 앞에서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사업체 왈, 포장이사라서 그대로 모든 걸 외국까지 옮겨주니깐 딱히 우리가 짐을 미리 싸둘 필요는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홍길동은 자기 나름의 최적화를 위해 본인 회사에서 안 쓰는 박스를 수십 개 가져와서 미리 포장해 두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기 물건을 따로 빼놨다. 남의 손타는 게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빨리 짐 싸라고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하며 닦달했다. “오빠, 업체에서 확인 전화 왔을 때 우리 보고 미리 짐 싸지 말라고 했었는데?“ 말해도 뭐 그리 바쁘고 불안한 사람처럼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갑자기 뭐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혼자서 폭발했다. 그야말로 급발진이라서 대처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 넌 그럼 짐 싸지 말고, 외국도 가지 마! 나만 갈 테니깐 그냥 우리 따로 살자. 야! 너 지금 결혼식 끝났다고 본색 드러내는 거냐? 이제 연기 다 끝났다 이거야?


말 그대로 급발진이라서 그의 화 시작과 끝점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자기가 잡은 해외이사 스케줄인데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건지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결혼식이 끝나고 이바지 비슷하게 엄마는 음식을 준비했다. 출국과 이사가 먼저 있어서 신혼여행도 못 가는 바람에 정식 이바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빠가 농사지은 더덕으로 엄마가 담근 더덕주에 백화점에서 산 한우세트에 압구정 유명 떡집 떡을 들고 시댁에 갔다. 그 자리에 정작 홍길동은 없었다. 나머지 가족들끼리 고기를 구워 먹고 더덕주를 마시는 동안 홍길동 혼자 화를 내며 짐을 옮겼다. 시부모님은 폭발한 아들을 건들지 않았다. 그의 가족 아무도 그를 컨트롤할 수 없어 보였다. 나는 처음 보는 생경한 장면이었다. 연애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엄마에겐 오빠도 다 같이 맛있게 먹었다고 거짓말로 문자를 보냈다. 결혼식이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 그렇다 해도 남편이 왜 저렇게 갑자기 변한 건지 내내 눈치 보느라 나는 엄마가 보내준 고기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 체했다. 시아버지는 그 상황에서 현대백화점 고기보다 하나로마트 한우가 훨씬 더 낫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말도 참 이상했다. 사돈이 준비해 준 이바지 음식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것도, 자기 아들이 멜트다운 와서 폭주하는 상황에서도, 그 어떤 맥락에도 안 맞는 말이었다.




대망의 이사 당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른 장마가 시작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이삿짐을 나르러 온 아저씨들은 우리가 미리 싸둔 박스들을 보더니 짜증 섞인 한숨을 쉬었다. “이거 저희가 다 다시 뜯어야 돼요. 이 박스는 얇아서 이걸로는 못 옮겨요. 담당자한테 사전 연락 못 받았어요?” 분주한 현장에서 죄송함은 내 몫이었고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안 가져갈 짐들을 엄마 집에 놓고 오겠다며 자기 부모님 댁으로 간 그는 함흥차사였다.


나는 홍길동 없이 혼자서 인부 다섯을 상대하며 현장을 지켰다. 엄마 집에 간다고 사라진 그가 왜 안 돌아오는지 미처 챙길 정신도 없었다. 우리는 컨테이너 하나를 통으로 빌린 게 아니라 일부만 공유하는 거라서 짐이 누락되거나 잘못 섞이지 않도록 컨테이너에 실리는 걸 끝까지 지켜보며 체크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치고 시댁으로 가보니 남편은 혼자서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다. 대체 무엇에 화가 난 건지 모르겠지만 많이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이 날의 사건은 그의 언어로 잘 포장되어 홍길동이 주장하는 이혼 사유 중 하나로 둔갑됐다.


그는 내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돌변했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대체 어디가 돌변한 건지. 생각해 보면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가 연애 시절 내내 연기를 했기 때문에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가면을 벗으면서 자아가 어그러진 건 아닐까.




사건이 터지고 몇 달 뒤에 홍길동과 우리 아빠가 만난 날, 그는 아빠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주가 변했어요. 결혼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저도 너무 힘들어요. 저도 예전의 연주가 그리워요. 진짜로 뭐가 진짜 연주인지 모르겠어서 너무 혼란스러워요.”


아빠는 이미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위의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사람이 한순간에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네가 봐온 연주는 계속 연주라고. 너네 상황이 변한 거지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낮에 카페에서 성인 남자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있는 게 얼마나 어색했겠냐고, 하지만 진심으로 이 상황이 안타까워서 자기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색함을 개의치 않고 손잡았다던 아빠였다. 물론 아빠의 진심은 그의 벽을 타고 넘어가지 못했다.




그는 아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과 현실을 다투는 건 내게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잠시나마 같이 살았던 결혼 전의 그 남자가 여전히 그립다. 그가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찰나일지라도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빠가 나를 죽였으니 그거에 대해선 사과하고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라고. 치료 잘 받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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