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세계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제 메일을 보낸 작가님께 바로 답장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일면식도 없는 분의 브런치 글을 읽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 응어리를 토로한 것은 어찌 보면 그분께 굉장히 무례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내 마음이 미련일 수도 혹은 미련을 떨쳐내는 노력일 수도. 둘 다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끝까지 애써보고 싶었다. 혹시라도 내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가님의 배려심에 뭐라고 말할 지도 막막하고 굳이 대화를 나눌 사이가 아님에도 정성 가득한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작가님은 남편 홍길동을 마치 자신이라고 대신 생각하며 그의 마음을 읊어주었다. 나의 정신과 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혹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여기저기 찾은 흔적 어디에서도 이런 내용은 없었다. 그 정도로 작가님의 답장 하나에 홍길동의 개념과 행동을 매칭할 수 있었다. 물론 안다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그의 마음은 이랬겠구나 하고 어림잡아 끄덕이는 것과 그 행동이 진심으로 이해되고 내 상처가 자가 치유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당연히 내가 메일을 보낸 이 작가님과 홍길동은 접점이 전혀 없고 성별도 다르며 다른 환경의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엄연히 다른 사람이지만, 어쩐지 이 분의 답장은 마치 홍길동의 마음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모든 게 말이 됐다. 그가 왜 나를 버렸는지, 왜 자신이 상처를 받았고 가장 피해자라고 말을 하는지, 나에게 배신을 당했고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그의 세계에선 매우 논리적인 감정선인 게 된다.
그분이 말했다. 자신은 주변 사람들을 외롭게 만든다고. 가족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정도 많지만 표현할 줄 모르고 굳이 자신을 뜯어고치며 표현해야 하나 싶기도 하며 뜯어고치려고 해도 잘 안 된다고. 길동과 연애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동거를 하며 결혼식을 목전에 두었을 때 점점 하나의 가족이 된다는 느낌보다는 각자 따로 튀는 두 개의 탱탱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30년 넘게 따로 살아온 두 사람의 세계관이 하나로 합쳐지기 위해 부딪히는 과정에서 드는 이질감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나도 여자랍시고 메리지 블루가 온 건가 싶었다. 앞으로 결혼하면 옛날만큼 자유롭게 여행 다니지도 못하겠지, 애 낳는 건 난데 남들이 오히려 빨리 아기 낳으라고 닦달하고 참견하겠지 이런 걱정들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막연하게나마 느꼈던 그 이질감은 사실 홍길동의 내면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무작정 본능적으로 숨겼지만 미세하게나마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의 부족함이 아니라 불가능함이었다.
작가님은 얼굴도 모르는 내가 아직도 홍길동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느끼시고 일종의 의리 혹은 책임감으로 답장을 정말 정성껏 써주셨다. 그래서 무척 슬펐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까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바운더리에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이렇게 딱 두 부류로만 구별 짓고 자기 기준으로 그 경계를 넘는 순간 한순간에 등 돌리고 떠난다는 그의 세계관이 내게는 몹시도 잔인하다. 나는 우리가 한세계에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했다는 게 나의 해답이다. 3년간 그와 나는 아마 주파수가 다른 사랑을 했었나 보다.
차라리 일반적인 이별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내가 사랑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텐데.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를 이해할수록 내 우울만 깊어진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이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더 미칠 것 같다. 결국 이러다 길동보다 내가 먼저 입원할 것 같다.
작가님과 제가 주고받은 메일의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따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