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하면 몰입. 또는 억지로 일하면 회사에 저당 잡힌 인생
퇴근하고 집에 오니 저녁 8시 반. 강아지 산책부터 시키고 다시 집에 들어오니 9시가 한참 지났다. 저녁을 아직 못 먹어서 그냥 굶고 제칠까 생각하다가 냉장고에 미리 사둔 생닭이 생각났다. 비닐도 뜯지 않은 채 냉동실로 직행하는 건 생닭에게도 미안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븐을 예열한다.
닭다리살을 우유에 잠깐 담가서 냄새를 제거하고 앞뒤로 올리브유를 바른다. 소금, 후추, 파슬리를 뿌려서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예열이 끝난 오븐에 넣는다. 전자레인지 3분 조리 음식을 먹는 것과 오븐으로 30분 요리해서 밤 10시에 먹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몸에 나쁠까. 둘 다 나쁘겠지. 회사가 잘못했다.
아니. 회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
어제는 임원 단독 보고에 들어갔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이제 수습 딱지 떼고 분위기 파악이 슬슬 끝났을 기간인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내가 다녀본 회사 중에 경력직에게 가장 불친절한 곳.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 하나 없이 쌓인 실무를 냅다 던진다.
인수인계는커녕 회사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안내도 없이 계약 진행하고 비용 처리하고 내년도 사업 기획을 하고 예산을 핸들링하라고 해서 지금 텃세 부리나?! 직장 내 괴롭힘인 줄 알고 화가 났지만 알고 보니 회사 전체가 그렇다. 전임자의 인수인계라는 개념도 없고 문서의 아카이빙이나 공유 개념도 없는 폐쇄적인 전쟁터. 원래 경력직은 서러운 거라기엔 이직을 처음 해본 것도 아니라 말이 안 된다.
보고를 마치고 나와서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쌓인 메일에 회신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려면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랬겠지만 나의 아빠는 특히나 바쁘기로 유명한 직업이었고, 내가 유치원 때는 그만큼 젊었던 아빠의 바쁜 생활이 정점을 찍던 시기였다. 그때 엄마는 오로지 혼자서 우리를 키웠다. 오죽하면 유치원에서 열린 가족 그림 그리기 대회에 엄마와 나, 동생 세 명을 그리곤 생각주머니 말풍선에 아빠 얼굴을 그려 넣은 다음에 "아빠... 보고 싶어요."라고 써서 냈다. 누가 보면 아빠 없는 애로 오해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아빠는 바쁜 직업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으로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서 항상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갔다. 본인의 사회생활을 핑계로 여가를 즐기지도 않았고 오로지 일과 가족이었던 것 같다. 내가 회사에 다녀보니 아빠의 대단함이 제일 크게 와닿는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어떻게든 급하게 회식을 잡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은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다.
아빠는 어떻게 이런 출근길을 평생 오간 것일까. 야근에 갈리다 못해 온몸에 독소만 가득 차 있던 어느 날, 아빠에게 물었더니 아빠는 싱거운 대답을 했다.
"바빠도 그 일이 재밌으니깐 했지. 틀에 박힌 일이 아니라서 재밌게 했던 것 같아."
일이 재밌다는 말이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빠는 워커홀릭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직 후 매달 월 근무시간 초과달성에 대해 사유서를 작성하면서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고는 아빠의 말에 동조하게 되었다.
화엄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인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 우스갯소리로 미국 슈퍼볼에 당첨돼서 몇 백억이 한 번에 내 손에 들어와도 나는 그 돈으로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재단을 세워서라도 계속 일을 할 거라고 늘 말했다.
사람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산성 혹은 동력에서 발생된다고 생각한다. 그래 내가 이렇게 매일 12시간, 13시간씩 일하는 것도 몰입이야. 회사에 저당 잡힌 인생이라며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자.
일에서 발생하는 건 돈도 커리어도 아닌 자존감이다.
좋아. 오늘도 이렇게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완료했다. 띵동. 때마침 오븐 알람소리가 들린다.
밤 10시에 먹는 늦은 저녁의 맛은 어떨까. 성취감으로 가득 찬 꿀맛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