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연주 Sep 03. 2024

생존신고: 야근에 깔려 죽어가는 중

한 달 만에 씁니다.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고 와중에 일은 너무 바빠요.

1. 주말 출근은 물론이고 하루 열다섯 시간씩 회사에 갇혀서 일을 쳐내고 있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라도 계절감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 바다를 향해 난 큰 창을 활짝 열어젖힌다. 밤바다를 타고 넘어오는 바람 끝에 벌써 겨울이 묻어있다.


보름에 한 번씩 주말마다 잠깐 서울에 올라가지만 정신과에 약을 타러 가는 것일 뿐, 가족도 친구도 만나지 않는 고립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처서가 지나도 서울은 여전히 뜨겁다. 현기증이 나는 이유가 도심의 콘크리트 열기 때문인지 이곳저곳 덕지덕지 묻은 내 상처가 곪아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건지는 모르겠다.




2. 글쓰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일상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과부하가 걸려있다. 주인 잘못 만난 강아지는 주에 두 번 가던 유치원을 네 번씩 나가고 있다. 쏟아지는 일에 깔려서 과로사하지 않으려면 뒤통수만 대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회사로 뛰쳐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강아지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걱정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다음은 이제 요리를 해 먹겠다며 마트에서 장 봐온 재료들이 다 썩어나가고 있다는 것.




3. 소송이 시작되었다. 홍길동은 첫 기일에 참석했다. 변호사를 통해 들은 홍길동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많이 아프고 심각하다는 것. 하필 재판이 있던 주에 우연히 그것이 알고 싶다 1396회 <변호사 남편은 왜 아내를 살해했나?> 재방송을 보게 되었고, 방송 내내 아내를 살해한 남편 현모 씨가 홍길동과 오버랩되어서 소름 끼쳤다. 현모 씨가 대단한 아버지의 그늘에 갇혀서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도, 편집증과 강박증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방송을 다 보고 결국 병원에서 받은 공황장애 비상약을 다 소진해 버렸다.


지금은 내가 죽든지 니가 죽든지 둘 중에 한 명이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상황이다. 나의 부모든 홍길동의 부모든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홍길동이 두려워서 모두 그에게 끌려가고 있다. 혹은 골치 아픈 일은 깔끔하게 회피하면 고통받는 건 나 하나뿐이라서 다들 괜찮은 걸지도.




4. 지방도시에 내려와도 기분이 나아지는 건 없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입사 동기가 지나가는 말로 한 게 작은 돌멩이처럼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왜 그렇게 자꾸 도망 다녀요?" 그러게. 회사를 옮기고 서울을 떠나 중소도시로 이사 온 것이 결국 도망일 수도 있다. 나는 살아보겠다는 발버둥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끝없이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생각의 곁가지 아무거나 잡으면 계속 극단적인 결말로 사고가 튄다. 이를 테면 리셋 버튼을 누르듯이, 게임에서 '나가기'를 클릭하거나 전원 플러그를 뽑듯이. 다행인 건 이런 생각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물리적인 바쁨이 계속되고 있다는 거다. 나의 인생은 나를 구하기 위해 이만큼 혹사시키고 있나 보다.




5. 글이 길어지면 내일 출근에 지장을 받으니 이쯤에서 줄여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