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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06. 2024

31일 동안 31개의 글을 썼다.

브런치 개설 한 달 차 심중소회

작년 12월 6일 처음 브런치를 개설하고 글을 썼다. 작가 신청이 하루 만에 통과됐다. 12월 6일에 써둔 글이 브런치 작가 승인 이후에 발행되었으니 첫 글은 12월 7일 날짜로 발행되었다.


12월 6일 그날은 여러모로 바빴다. 이직 면접을 봤고, 면접이 끝나자마자 심리 상담도 잡혀있었다. 면접에 상담까지 하루종일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이미 기가 빨린 상태였다. 점심도 못 먹어서 입에서 단내가 났다. 정확히는 배고픔보다 목마름이 더 심했다. 글을 쓰기로 불현듯 결심한 것은 오후 3시가 다 지나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혼자 늦은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점심때를 놓쳐서 살짝 출출하기도 했지만, 상담받은 날이면 항상 마음이 헛헛해서 배고픈 걸로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공허함과 헛헛함을 배고픔으로 착각하고 숨기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가장 쉽게 회피하는 방법이었다. 텅 빈 냉장고를 자꾸만 열었다 닫았다. 입도 짧고 위도 작아서 어차피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식욕부진 때문에 어차피 먹고 싶은 것도 없는데.




1년 전 부부 상담의 연으로 상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상담이 끝나면 후련함이나 깨달음 같은 통찰이 있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고, 이미 신혼집에서 동거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잘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남편에 대해서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내게는 절실했다. 상담을 갈 때마다 갈증해소가 되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항상 미래에 대한 용기를 잔뜩 충전해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나를 잃어버린 후 근래의 상담은 백사장에서 모래알을 골라내는 작업과도 같았다. 의미 없고 허무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 몸뚱이가 가서 앉아있지만 껍데기뿐이고 쏟아놓을 감정도, 그렇다고 참았던 슬픔도 없었다. 감정을 느끼려거든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죽어버렸으니깐. 그래서 갈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했고, 상담이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발버둥 쳐봐도 한심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가끔 그래도 기운 내서 정신이 좀 맑은 날에는 또렷하게 이혼 과정에 대해서, 시댁에서 말하는 피해보상에 대해 잠시 맨정신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뿐이었다. 상담센터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역시 제자리걸음 같은 시간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 덕을 쌓는 중이라고 믿으며 성실하게 병원을 가고 상담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날 상담은 씩씩하게 받았다. 바로 앞에 면접을 보고 와서 면접 소감을 얘기했다. 선생님은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보셨다.


“아직 세상이 무섭지만 그래도 일하고 싶어요. 예전에 남편 만나기 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저는 제 일에 애정도 있고 열정도 있었어요. 일에 몰입할 때 제 삶의 가치를 느꼈었거든요"


그날 선생님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버티고 있다고, 훌륭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사회로 돌아가서 일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동료들도 사귀고 하면 차츰 더 좋아질 거라고. 너무 고루한 말이지만 정말 시간이 약이라고. 선생님이 보시기엔 지금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내 감정을 너무 억압하고 있다고. 이성의 끈을 꼭 붙들고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하셨다. 안쓰럽고 애처로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고.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는 항상 사람이 많아서 가기 싫은 곳인데 평일 오후 3시에는 정말 한산했다. 그날따라 여유로웠던 것일 수도 있다. 얼굴에 근심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쇼핑을 잔뜩 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대부분 일행과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옆자리에는 쇼핑백이 가득 놓여 있었다.


나는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피해 혼자 벽을 보고 앉아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일 구석자리로 갔다. 스테이크 솥밥을 시켜서 먹었다. 가격만 더럽게 비싸지 맛은 엄마밥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뻔한 푸드코트 메뉴. 그래도 나 열심히 산다, 기특하다, 오늘 면접도 보고 상담도 갔으니깐 밥도 다 먹어야지, 맛있게 먹으면 맛있는 맛이지. 씩씩하게 밥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쑤셔 넣었다. 그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OO아, 나 글을 좀 꾸준하게 써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네. 내 글 좀 봐줄 수 있어?"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친구한테 감 놔라 배 놔라 글에 대해 마치 뭐라도 아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글 써야 되는데. 브런치 개설하고 글 쓰는 게 새해 목표라고 벌써 한 10년째 말하는 것 같아. 그동안은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안 썼고, 게을러서 안 썼는데. 이제는 내 마음의 상처를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써야 할 것 같아"


"그래 너도 써. 우리 같이 쓰자"


"야 우리 그럼 진짜 매일 하루에 한 편씩 글쓰기 챌린지 할래? 서로 자정 지나기 전에 숙제 검사 하듯이 링크 공유하기. 어때"


"나는 너무 좋지. 작심삼일도 안 될 것 같고. 약속이니깐 서로. 나 오늘부터 쓸게. 너도 오늘부터 써“




바로 집에 가자마자 브런치를 개설하고 글을 썼다. 면접을 본 내용에 대해서 썼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꼬박 글을 썼다. 밀린 구몬 하듯이, 하루에 여러 편 몰아서 미리 써두고 저장해 놓은 적도 없다. 그렇게 할 기력도 없지만, 애당초 내가 스스로 한 약속은 단 하나였다.

'매일 내 마음을, 그때 그 순간을 관찰하기'




한 달이 지났다. 아직 내 마음속 깊은 상처는 감히 건들 자신도 없어서 케케묵은 감정을 게워낸 것 밖에 없는데 구독자는 곧 100명을 바라본다. 브런치를 만들고 글쓰기 시작한 지 2주 만에 내 글이 메인에도 떴다.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갔다. 비슷한 아픔을 겪거나 겪었던 사람들에게 공감과 응원의 댓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글을 썼다고 힘든 감정이 사라지진 않았다. 이혼은 어떻게 하는 건지 여전히 막막하다. 생각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서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 결국 언젠간 생각하고 결단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긴 하다.


그래도 글 쓰는 덕분에 지금 조금은 버티고는 있는 것 같다.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를 운동장이 생긴 기분이라서 다행이다. 그 운동장에는 선생님도 다른 학생들도 아무도 없고 오직 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너무 힘든 날은 미친년처럼 생난리를 펴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못 하는 게 좋다. 그것만으로도 브런치를 시작하길 잘했다. 글을 쓰길 잘했다.




내가 브런치를 만든 지 꼬박 만 한 달이 된 오늘. 친구는 그동안 블로그에 쓰던 글을 이제 브런치랑 분리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도 브런치를 개설했고,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다. 한 달 전에는 혼자서 글 써야지 결심했다면, 정확히 한 달 뒤에는 둘이 공동집필로 매거진을 만들어 볼까를 논의하고 있다니. 재밌는 우연이다.


뭐에 대해 쓸까, 일단 오늘은 뭐 쓰지, 글감 생각을 하다 보면 팍팍한 일상에 그래도 조금 숨통이 트인다. 앞으로도 계속 써 내려가야지. 마음을 쓰는 일, 글을 쓰는 일. 결국 내가 잘하는 건 쓰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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