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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07. 2024

이름이 달랐으면 운명도 바뀌었을까

실명으로 내 사생활을 팔기엔 사연이 너무 기구해서 필명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연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하지만 아빠 엄마는 그 이름이 여성스러워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이 너무 가녀려 보인다고. 첫 아이였던 만큼 큰 기대와 욕심이 있어서 우리 딸이 똑똑했으면 좋겠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사람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부모님의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연주 대신 중성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내 이름은 한자 뜻만 봐도 태양, 리더, 우두머리 이런 느낌이 든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똑소리 나고 영재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 원래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말이 빠른 편이라고 하지만, 나는 같은 개월수 여자아이들보다도 훨씬 말이 빨랐다. 연년생 동생을 보기 전부터 이미 어른 같은 구석이 있었다고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그림책을 집어 들고 읽는 아이였다. 한글도 빨리 뗐고, 유치원에서 그림일기 숙제를 내주면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칸이 모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매년 반장, 부반장을 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똑소리남, 영특함, 똘망똘망함, 매사에 적극적임. 이런 단어들이 나열돼 있다. 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 교지를 만들었는데, 1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항상 학년 대표로 내 글이 실렸다. 엄마는 학부모 상담을 갈 때마다 이 아이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매년 담임선생님들께 들었다.


물론 중학생 때부터는 더 이상 영특한 아이가 아니었다.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반에서 중간 정도. 부모님은 주입식 교육에 굉장히 회의적이었고,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대신 아빠가 매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영어 교과서만큼은 통째로 외우게 하고 검사했다. 그리고 조중동 1개와 한겨레, 경향신문을 같이 읽게 했다. 똑같은 기사여도 어떻게 다른지 두 눈으로 직접 보게끔 했다. 엄마는 만화책도 책이니깐 실컷 읽으라고 책방에 같이 가서 만화책을 잔뜩 빌려줬다. 친구들이 특목고 입시 학원을 다닐 때도 나는 학원 대신 온갖 활자매체를 다 읽었다. 그래서 수학, 과학은 못해도 국어, 영어는 항상 100점이었다. 그렇다 할 사춘기도 딱히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에 더 관심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벼락치기를 해서 적당히 괜찮은 대학에 갔다.




살면서 내 이름이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우등생도 날라리도 아니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에 비해 이름만 너무 튀는 것 같기는 했다.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나랑 이름이 같은 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선생님들이 이름 멋있네, 특이하네 한 마디 해주면 쑥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종종 지영이, 민지처럼 평범한 이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 이름은 흔하지 않아서 멋있다고 생각했고, 중성적이어서 왠지 쿨하게 보였다. 시대가 변할수록 젠더리스, 젠더뉴트럴이 대세가 되면서 이름도 중성적인 이름이 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미 30년 전에 세상을 멀리 내다보고 내게 중성적인 이름을 붙여준 엄마 아빠가 더 멋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이름을 지어준 엄마는 가끔씩 내게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준 것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게 엄마는 내가 요조숙녀처럼 얌전히 집에만 있다가 빨리 시집가길 바랐는데, 나는 엄마의 바람과 정반대로 결혼엔 관심도 없고 지구 구석구석 여행 다니기 바빴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지을 걸 그랬다고 몇 번 말했다.


“그 이름 한자 뜻도 좋았는데. 듣기에도 여성스럽고. 그랬으면 너 성격도 좀 더 여성스럽고 참했을 텐데. 결혼도 진작 하고"


내가 여행 다니는 건 이름 때문이 아니라 기질이고 성격이라고 백번 천 번을 말해줘도 소용없었다. 내 기질, 성격 다 아빠 엄마한테서 온 거라고, 피는 못 속인다고 말해봤자 입만 아팠다. 어차피 엄마는 정말 나랑 싸우고 싶은 게 아니라 은연중에 아닌 척 계속 결혼을 압박하는 걸 알았다.





"근데 너는 이름이 뭐야?" 남편은 처음 만난 날 나한테 관심도 없다가 한참 뒤에 내 이름을 물어봤다. 우리는 친구들 다 같이 놀러 간 자리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도 남편도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내 이름을 말하자 남편은 깜짝 놀랐다. "엥? 내 동생이랑 이름 똑같네. 신기하다"


나도 신기했다. 살면서 나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너무 특이한 이름은 아니지만 역시 흔한 이름도 아니어서,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으려면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한 다리쯤 건너면 찾을 수 있는 정도의 이름이었다.


"넌 한자 뭐 써?"

재밌게도 남편의 동생과 나는 한자까지 같았다. 내 이름의 한자가 작명에 잘 쓰이는 한자는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에 신기했다. 그것 말고도 남편과 나 사이에는 꽤 많은 우연이 겹쳤다.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집안과 왕래가 많은 편이었다. 시부모님은 막내아들과 예비 며느리의 이름이 같아서 부를 때마다 서로 헷갈리시는 일이 잦았다. "OO아," 부르면 남편의 동생과 내가 동시에 대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할 때마다 구분 짓기 위해 우리 이름 앞에 성을 붙이셨다.


나는 이게 그저 웃긴 일화라고 생각해서 엄마에게 말해줬다. 그러자 엄마는 앞으로 가족이 되면 더 불편하겠다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다. 내 이름을 싫어했던 적도 없는데?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엄마가 먼저 바꾸라고 말한다고? 이름이 뭐 별 건가, 부르는 게 이름이지. 그렇지만 개명의 이유가 고작 예비 시동생이랑 이름이 똑같아서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싫어. 나는 내 이름 좋은데. 내가 싫다는 것도 아닌데 왜 바꿔야 돼? 이거 그냥 웃자고 한 얘기인데. 그리고 굳이 바꿀 거면 나보다 늦게 태어난 오빠 동생이 바꿔야지. 어차피 우리 둘 다 바꿀 이유 없어. 엄마가 지어준 소중한 이름이면서 뭐 그런 쓸데없는 이유로 딸한테 이름을 바꾸라고 해 엄마는. 진짜 기분 나쁘게"


엄마가 그런 말을 한 게 이해되지 않아서 기분이 나빴다. 시댁에서도 아무렇지 않고, 당사자인 나도 시동생도 아무렇지 않은데 왜 엄마가 먼저 나서서 그런 말을 하는지 속이 상했다. 이게 바로 딸 가진 부모는 죄인이라는 뭐 그런 건가? 엄마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엄마는 앞으로 네가 결혼해서 더 예쁨 받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서... 할아버지가 지어줬던 이름도 뜻이 좋고 예뻤어. 참하고 단정하고 예쁜 사람, 뭐 그런 뜻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젊었을 때는 괜히 우리 애니깐 우리 마음대로 하고 싶었나 봐. 근데 돌아가신 할아버지 말씀 들을걸 그런 생각도 드네. 그냥 해본 말이야. 이름이 뭐든 너는 똑똑하고 지혜로우니깐 시집가서도 잘 살 거야. 시집가서 시부모님한테 잘하고. 알았지?"




우리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쓰지 않아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지 자책하고 있진 않을까. 이름은 분명 중요하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름은 불러주는 사람들의 기운이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요즘 브랜딩에서도 네이밍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를 하는 거 아닐까. 신축 아파트에 이 세상 온갖 좋은 영단어는 다 갖다 붙여서 열 글자도 넘는 이름을 갖고,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받는 세상. 그래서 나는 오늘 내 손으로 필명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처음 내게 지어주셨던 이름, 엄마의 소원이 담긴 그 이름으로 상실과 사랑을 써야지. 이름처럼 참하고 단정한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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