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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09. 2024

나 이 정도면 남편 증오해도 돼?

내 감정을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우연히 신혼 이혼이 굉장히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라도 내 이야기일까 봐 숨죽여 들었다. 듣자 하니 그 부부는 연애를 몇 년이나 했는데도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이혼을 했다는 사연이었다. 연애 때는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는데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폭력성을 보이더니, 결국 부부 싸움 중에 남편한테 일방적으로 맞고 끝났다고. 그 사람도 너무 충격이 커서 이혼 후에 한동안 사회를 등 뒤로 했다고.




내 이야기도 세간에 알려지면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구전되겠지.

'결혼하자마자 보름 만에 끝났대, 남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나 봐. 그래? 그럼 그걸 몰랐대? 세상에 모를 수가 있어? 알고도 눈감고 결혼한 거 아니야?'


내가 나서서 광고할 필요도 해명할 필요도 없지만 이쯤 되니 궁금했다. 결혼, 이거 완전 긁는 복권 아니야?

누누이 숙고해 봤다. 도대체 누구 잘못인 건지. 항상 자아성찰을 잘하는 편이라 습관적으로 자기반성을 하다 보니 결국 비난의 화살을 돌릴 사람이 나뿐이었다. 그래서 내 속이 시꺼멓게 곪기 시작했다.


내가 만일 나이에 쫓겨, 조건에 눈이 멀어,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이 결혼을 선택한 거라면 자신 있게 내 탓을 하고 반성했을 텐데. 아님 차라리 남편이 결혼 전부터 계속 양다리를 걸쳐왔다거나, 신혼인데도 성매매 중독이거나 바람 폈기를 바랐다. 그랬으면 이만큼 힘들거나 아프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인간쓰레기를 위해 흘릴 눈물도 아까우니 그저 소송해서 피해보상 얘기하고 깔끔히 갈라서면 그만일 일이었다. 아니면 차라리 시댁과 남편이 한통속으로 나를 속여서 사기 결혼 당한 케이스였다면 더 좋았겠다. 선과 악이 명확하니 아무리 아파도 시간이 해결해 줬겠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봐도 어떤 상황에서든 상처의 크기는 똑같고 내가 받았을 충격도 컸겠지. 그럼에도 나는 계속 '만약 그랬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이렇게 희망회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본인 스스로 병식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까놓고 말해서 이혼이야 하면 되는 거고, 어떻게든 하게 될 이혼인데도 내 사고 회로는 정지된 것 같았다. 내 감정은 내 건데 내 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분명 나는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크게 받았고 유기당했는데, 아픈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해도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 마음을 누구한테 허락받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차라리 나도 남편처럼 평생 남 탓만 하면서 살아왔다면 좋았을 텐데 (이게 남편의 큰 병증인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이렇게 자아성찰을 하는 사람인건지 나 자신이 싫었다. 쉽게 남탓하고 책임 전가하면서 도피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조차 몰랐다.


누가 봐도 남편이 가해자인 게 맞긴 하는데, 아픈 사람을 탓하고 따져봤자 당사자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내 상실감이나 당혹감은 해결되지 못한 채 공기 중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은 나를 둘러싼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고, 나는 시간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는데도 약효가 전혀 없었다. 바깥세상의 시간만 흐르고 정작 내 시간은 상처를 깔고 뭉개 앉은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내게 제발 자기 아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라고 하셨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셨다. 내가 화병 들거나 평생 상처를 안고 살게 될까 봐 걱정하셨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건 당사자의 진심 어린 반성이나 참회였다. 그러나 병식이 없는 환자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본질적으로 무의미했다. 반성이나 참회를 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깐. 정말 두고두고 미안해할 사람이었다면 나를 이렇게 죽여버리지 않았을 테니깐.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남편을 증오해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근데 어디에 물어야 할지, 그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 몰랐다. 하늘에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108배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새벽 정진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너무 힘들겠지만 너는 또 어떻게든 이겨낼 거라고, 이 파란만장한 인생 끝에 평화가 넘칠 거라고, 너 진짜 정말 엄청나게 너무 잘 살려고 그러나 보다고 친구가 응원해 줬다.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니지만, 나 지금 이거 다 이겨내면 해탈해서 종교 하나 만들고 사이비 교주 되는 거 아니야?" 자조적인 농담도 하는 거 보면 그래도 한 단계 죽을 고비는 넘겼나 보다. 이제 108배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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