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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12. 2024

사랑은 천재지변 같은데 말이지

인연과보라는 말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사람들이 그랬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거라고. 길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맞아 쓰러진 거라고. 내게 결혼은 그런 거라고. 병원에서도 그랬고 상담 선생님도 그랬다. 가끔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내게 그런 말로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결혼이 원래 그렇게까지 슬프고 아픈 거야? 억울함에 시름시름 앓아누워야 하는 거야?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필연이 요구되는가. 그게 단순히 사람이 노력한다고 뜻대로 되는 걸까.


그렇다. 나는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여느 연애처럼 호들갑 떨면서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나는 원래 운명보다는 인연을 믿는 편이었다. 운명은 왠지 너무 수동적으로 들린다. 누군가는 인연조차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운명을 꿈꾸기엔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결혼하려고 애쓰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인연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불교에선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인연과보. 솔직히 말해서 인연과보라는 말보다 인과응보를 더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사랑했던 사람을 대상으로 인과응보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도 너무 구역질 나고 나 자신이 싫어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원인을 모르면 우연이라 하고, 원인을 알면 필연이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남편과 내가 운명이라는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머릿속으로 꽃밭을 그렸다.




우리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내가 미리 알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서로 만나선 안 되는 악연이었는데 그걸 몰라봤던 걸까. 괴로움에 자꾸 과거를 들춰보지만 언제나 후회만 남을 뿐 아픔이 사라지진 않았다.


과거 누굴 만나더라도 결혼은 남의 일 같았고 내 미래가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았는데, 남편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취미 활동을 공유하며 같이 늙어가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연애 초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신기한 우연이 많이 겹쳤다. 둘 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디제이 공연이 같았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10년도 전에 이미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 사회생활하면서 큰맘 먹고 산 제대로 된 비싼 시계가 하필 남녀 커플 모델로 나왔던 시계였다. 까르띠에처럼 인기 있는 브랜드도 아니었다. 근데 우리는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커플 시계처럼 그 시계를 남녀 버전으로 차고 있었다. 구매 시기도 비슷했고 둘 다 면세점에서 산 것도 같았다. 부모님의 고향도 비슷했고 그래서 집 김치 맛도 똑같았고 입맛도 같았다. 처음 하는 연애도 아니라서 딱히 쓸데없는 일로 힘 빼고 싸우지도 않았다. 우리는 정말 잘 맞았다. 나는 정말로 남편이 내 운명의 반쪽이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하지만 운명 같은 건 없었고, 우리는 인연도 아니었다. 꼬이다 못해 너무 엉킨 인연은 다시 풀 수도 없어서 잘라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아프다. 마치 내 핏줄도 같이 잘려나가는 기분이다. 심장이 떨어져 나가듯 여전히 매일 고통스럽다. 하지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교통사고가 아니다. 내가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벌어진 것.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나의 인연과보. 다른 뜻은 없다. 애초에 사랑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주말 계획 없이 맞이해 버린 금요일 퇴근길이 쓸쓸하게 느껴질 일도 없었을 거다. 그저 평범한 금요일 퇴근길이었을 텐데. 약속 없는 주말을 굳이 공허하게 느끼지도 않았을 텐데. 다시는 사랑을 퍼주고 상처받고 하는 짓을 반복하지 않겠다.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 용기를, 그래야 할 이유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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