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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20. 2024

내 밑바닥에는 꽃이 잔뜩 피었다.

밑바닥에 떨어져 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오늘은 하루종일 외롭지 않았다. 내 생일이라고 친구 두 명이 나를 찾아와서 각자 점심, 저녁을 꽉 채워줬다. 아직 진짜 생일이 오지도 않았는데, 생일 축하해 주겠다고 먼저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인생 헛살지는 않았나 보다.


점심도 사주고 내가 좋아할 만한 소설집에 여행 기념품에 꾹꾹 눌러 담은 손편지로 기어이 나를 울린 친구.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심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친구의 글을 스무 살 때부터 좋아했다. 무해하고 긍정적인 온기가 느껴지는 글들. 그리고 나는 친구의 그런 마음을 매년 생일이나 기념일마다 짧고 긴 편지로 선물 받았다. 특히 이번 생일에 받은 편지는 유난히 힘이 실려있었다. 힘내, 기운 내라는 말이 없어도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친구의 글에는 평소보다 더 강한 사랑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따로 약속도 없었는데 갑자기 "언니~ 지금 뭐 해? 아니 곧 언니 생일이니깐 언니 보러 갈까 해서" 하고 집으로 슝 날아온 친구. 그녀의 두 손에도 역시 케이크와 왕관 머리띠가 들려있었다. 둘이 피자를 먹으면서 새로 올라온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을 한 번에 몰아봤다. 몰입감이 장난 아니라서 냉장고에 있는 케이크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친구가 사 온 케이크 위에는 레터링으로 내 이름이 예쁘게 써져 있었다. 친구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며 자연스레 내 잠옷을 입었다.


나는 정말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지금 내 인생이 어디쯤에 있을까, 나는 여기가 제일 완전한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봐야 그 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떨어져 보니 여기에도 꽃이 잔뜩 펴있는 줄을 알게 되었다. 그래, 내 밑바닥은 사랑의 꽃으로 가득 찬 꽃밭이다.




생일 소원으로 바라는 거는 오직 하나,

그저 마음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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