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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19. 2024

생각해 보면 태어날 때도 원래 혼자였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



동생이 일본에 놀러 갔다. 마침 동생이 간 도시에는 가족끼리 오래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가 살고 있다. 그래서 동생에게 둘째를 임신한 친구 선물 좀 전해달라고 심부름시켰다. 착한 동생은 나 대신 친구 부부를 만났고, 친구는 곧장 선물 인증샷을 보내줬다. 내 시어머니도 그 친구 부부를 만난 적이 있을 정도로 나와 많이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받은 아이 사진을 시어머니께 전달드렸다.


출근을 시작하면서 회사에 치여 정신없다는 이유로 정말 오랜만에 시어머니께 연락했다. 그전에는 밥은 챙겨 먹었는지, 요즘 잠은 잘 자는지 자주 챙겨주셨다. 회사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이 방구석에 처박혀서 세상과 담을 쌓던 내게 밥이며 과일을 넣어 주셨다. 나는 아가미를 반쯤 내놓고 뻐끔뻐끔 거리며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있다가 종종 시어머니의 연락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엔 일단 회사에서 살아남자는 생각 밖에 안 남았다. 겨우 남은 에너지를 모아 일에 털어 넣은 지 보름 남짓.




"어머니 저녁은 드셨어요? 요새 별일은 없으셨고요?"


남편과 이혼하면 나와 어머니는 다시 남이 될 사이라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며칠 만의 연락이 괜히 더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아 제 동생이 지금 일본 놀러 갔는데, 제 친구 애기 있죠, 걔 사진 보내 드리려고요.”


어머니와의 짧은 통화 끝에 마침 남편이 오늘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제 정말 남이구나. 원래도 남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행방조차 내가 먼저 찾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사이라는 게 씁쓸했다. 그리고 우리의 꼬인 인연도 인연이긴 인연이구나 하고 퍽이나 웃겼다. 시어머니한테 정말 오랜만에 연락드린 날이 하필이면 그가 한국에 들어온 날이라니. 나한테 귀신같은 촉이라도 있나.

나는 '둘이 영원히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까진 아니어도, 남들처럼 사람 냄새 풀풀 풍기며 같이 늙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둘이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은 마치 내 인생이 처참하게 다운그레이드된 것 같았다.




마침 내 브런치를 읽는 어떤 분이 장문의 메일을 보내셨다. 그분께 동의를 구하고 메일을 요약했다.

매일 써주시는 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왜 가만히 계시는지 걱정이 됩니다. 이혼할 거라면서 왜 이혼 절차를 안 밟고 가만히 계시기만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속으로는 이혼하기 싫거나 아직 희망을 버리지 못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제발 꼭 이혼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정신 멀쩡한 사람이랑 살아도 힘든 게 결혼입니다. 저보다 한참 젊으신 것 같은데, 얼른 본인 인생 챙기시고 부모님한테 더 이상 불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정신 아픈 남편한테 8년을 시달리고 겨우 탈출해서 남일 같지 않아요. 저는 소송도 3년이나 걸려 더 힘들었어요. 이혼하고 보니 10여 년의 인생이 통으로 날아가고, 제게 남은 건 우울증 약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혼 결심하신 거면 빨리 변호사를 선임하고 대응하셨으면 좋겠어요. 필요하시면 제 로펌도 알려드릴게요. 힘내세요.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공감과 동정, 응원이 섞인 조언을 받았다. 화면 빼곡하게 쓰여있는 그분의 진심을 받은 건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그분의 글 중에 부모님께 '더 이상' 불효하지 말라는 말이 무척 슬프게 들렸다. 아, 내가 이미 불효를 했나? 그런가? 내 잘못이 아니어도 실패한 결혼 하나에 불효자식이 되는 거구나. 그리고 또 남들 눈에는 내가 이혼하고 싶지 않은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나는 이혼도 이혼이지만 적어도 남편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 모르는 사과를 기대하며 계속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걸 안다. 그럼 그분의 말처럼 정말 나도 모르게 이혼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나? 내가 이렇게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이혼이 무서운 게 아니라 혼자가 된다는 게 내심 겁이 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도 나는 혼자였다. 혼자되는 게 뭐 이상한 거라고. 세상에 혼자 태어나서 사람들과 잠깐 더불어 살다가 다시 혼자 죽는 게 인생이잖아. 받아들이자. 혼자인 걸 두려워하지 말자. 외로움에 너무 겁먹지 말자. 근데 몇 번을 되뇌어봐도 사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남편을 만나기 전에도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가족들, 친구들, 친척들… 대가족 분위기에서 왁자지껄하게 살아오다가 갑작스레 외로움을 맞닥뜨리자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무서움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홀로 무리에서 이탈된 오리 새끼가 된 기분. 나는 혼자서도 뭐든지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요즘 다시 혼자가 되는 법을 처음부터 배워나가고 있다.


지금도 계속 나에게 몇 번이고 되뇐다.

“괜찮아 원래 이 세상에 처음 올 때도 혼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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