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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30. 2024

일의 의미: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삶

어라 고장 났네

현재 시각 밤 11시 45분.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퇴근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않은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일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 자신을 되찾고 싶어서. 그렇지만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다. 내가 원래 꿈꿨던 인생은 일보다 사람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거였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몸과 마음 건강하게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 하는 것이 일이라고 믿어왔다. 만약 그저 돈만 벌기 위해서 하는 게 일이라면 어차피 세상에 깔린 게 일이다.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며 체득한 일의 의미는 자아의 경험적 확대였다. 연애를 해도 내가 누군지 알게 되지만, 일을 통해서도 내가 누군지 잘 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잘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우러지고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가치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일밖에 안 남았다. 사랑은 없고 일만 있다. 사랑할 게 일밖에 없는 사람은 어떻게 보이려나. 외로워 보일까? 당신들도 내가 안쓰러워 보이나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다. 일이든 생각이든 뭐든 멈추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는다. 자정이 다 되도록 집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도 결정하지 못한 걸 보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오늘도 곧 어제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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