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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31. 2024

설날에 뭐 하세요?

이게 이렇게 어려운 질문이었다니



-이번 설에 남편분 한국 들어오세요?

-네

-그럼 얼마 만에 만나는 거예요 두 분?

-두 달이요. 저번에 출장 때문에 한국 왔었어요.

-넘 애틋하겠다. 설에 뭐 하세요? 어디 안 놀러 가요?

-그냥 집에서 쉬고… 양가 부모님 뵙고 하겠죠.

-아 결혼하면 그것도 쉽지 않겠네요. 챙겨야 할 가족이 두 배로 늘어나니깐요.

-뭐 그렇죠. 근데 저는 원래 복작복작한 가족 문화라.

-근데 연주님은 이렇게 신혼인데 혼자 들어온 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 없어요? 진짜 친한 친구들 말고 친하지도 않은데 이래라저래라 쓸데없는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있죠. 그래서 저 한국에 혼자 돌아온 거 저랑 진짜 친한 친구들만 알아요. 제가 얼마나 제 커리어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저를 잘 아는 애들만이요.

-그럴 것 같아요. 저도 커리어 중요해서 제가 만약 결혼했으면 연주님처럼 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안 친한 사람들이나 친척들이 한 마디씩 괜히 하고 그러면 짜증 날 것 같아요.

-아 부부는 떨어져 있으면 안 되고 붙어있어야 한다, 애는 안 낳을 거냐 뭐 그런 말이요?

-네 어른들 그런 말 잘하잖아요. 전 그래서 명절에 친하지도 않은 친척들 보는 거 생각만 해도 싫더라고요. 이번에도 저는 설에 그냥 여행 갈 거예요.




“설날에 어디 가세요?”

너무 흔한 질문인데 미처 생각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설에 부모님 댁에도 못 가고 친척집에도 못 가겠다. 나 엄마표 떡국이랑 전 좋아하는데. 큰엄마가 한 갈비찜도 좋아하는데.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계속 늘어놓게 되는 이 상황이 너무 힘겹다. 나는 특히나 솔직 담백한 성격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친구를 사귈 때도 내 이야기는 캐물으면서 자기 이야기는 절대 안 하는 애들은 음흉해서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앞뒤 다른 사람을 싫어해서 나도 될 수 있으면 솔직하려고 했다. 만약 회사 사람들 중 누군가 내 브런치를 읽고 나에 대해 알게 된다면, 나는 그날로 무단퇴사를 하고 정신병원에 제 발로 입원할 것이다.


빨리 이혼을 하든 뭐가 됐든 내 상황이 정리가 되고 다시 새로운 회사로 또 이직하고 싶다. 아니면 한국을 영영 떠나고 싶다. 이제는 나에 대해 한 문장으로 답하고, 부연설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연주님은 남자친구 있으세요? 아님 결혼하셨어요?

-아니요. 혼자예요. 딱히 생각 없어요. 혼자가 좋아요.


그래서 이번 설에 나는 뭐 하지. 혼자 바다라도 보러 갈까. 어디 깊은 곳에 잠기고 싶다. 바다에 못 간다면 달력에서 설날을 삭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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