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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Feb 01. 2024

어느 경험 수집가의 무거운 이야기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요.




과거의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경험 수집가일 것이다. 가능한 선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비로소 나를 알게 되고,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구체적으로 정해질 거라고 믿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먼 나라 이웃나라로 시작해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낯선 나라, 발음도 어려운 외국인들의 이름을 읽으며 호기심을 계속 키워나갔다. 하지만 간접경험으로는 도저히 만족이 되지 않아 돈을 버는 족족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엄마 아빤 항상 내 걱정은 해도 절대 여행을 못 가게 막지는 않았다.


니 인생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유치원생에게 고작 서른다섯이었던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의 아빠는 지금 내 나이에서 크게 멀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니 인생 니가 살게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야. 니 인생은 니 거니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봐. 나는 유치원 장미반, 동생은 민들레반에 다닐 때부터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아빠의 그 말이 내 귀로 날아와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어린 마음에 탐험가의 불꽃을 피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탐험가 정신과 반비례하는 소심한 겁쟁이라서 몇 년씩 유랑하는 장기 배낭여행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 엄마 아빠의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걸 눈치껏 잘 알았다.


그래서 이 세상엔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2, 3년씩 여행을 훌쩍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내 이력서는 길게 끊어진 적이 없다. 그런데도 틈틈이 다닌 배낭여행만으로 5대양 6대주를 다 찍었다는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가장자리까지 갔다 왔다는 걸 증명해 준다.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결코 선을 넘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선을 왜 넘어야 하는지 몰랐고, 넘고 싶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때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수업 시간에 너무 열심히 들었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뼛속까지 각인된 장녀였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서 나도 모르게 몸에 유교가 배어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경험을 다 수집했다. 엄마 아빠가 내 선이었다.




살아온 역사를 굳이 나열한 이유는 내가 우울은커녕 우울감조차 모르고 살만큼 바빴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나는 우울이 슬프고 힘든 감정인줄 알았다. 그래서 우울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했다. 생리통이 심할 때면 아 오늘 생리 터져서 우울해, 떡볶이 당겨-라고 말했다. 아니면 회사에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재미없을 때도 우울하다고 말했다. 공휴일이 주말이랑 겹쳐도 우울했다. 우울한 게 참으로 많았다. 나는 또 우울이 재능처럼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례하게도 우울은 유전적으로 기저에 우울이 깔려있는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이제는 안다. 우울은 슬픔이 아니다. 아픔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한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 내가 옛날에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괴감이 든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굳이 어떤 감정으로 콕 집어서 표현하자면 그렇다. 아 나는 더 이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내가 전처럼 반짝반짝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 지금의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귀찮아진다. 어차피 쓸모없는데 씻어서 뭐 하냐는 생각이 든다.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밥을 챙겨 먹는 일, 휴대폰을 보는 일,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는 일, 힘들수록 더 힘내야지라고 말하는 엄마 아빠의 연락이 다 귀찮아진다.




우울에 대해서 이 지경으로 몰랐으니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턱도 없었다. 자살을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하고 말고 할 일도 아니지만, 솔직히 공감되지 않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안쓰럽고 안타까운 한편, 남은 가족들을 떠올리면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1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 마음이 뭔지 몰랐다. 나는 영영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제는 그 마음을 안다.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심정을. 그건 절대 죽고 싶다는 열정이 아니다. 미움에도 애정이 있어야 하듯이, -싶다는 말은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욕구가 있다는 뜻이다. 열정이나 욕구를 갖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힘이 없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려고 힘을 낸다는 건 영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남편에게 배신당했을 때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죽어도 상관없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내가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든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건 자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마치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방귀나 트림 같은 생리현상이었다.




우울과 자살의 마음을 경험해 본 건 아마 내가 지금까지 해본 수많은 경험들 중 최초로 내 마음속에 있는 선 바깥의 것이다. 선을 넘어보니 이제야 알겠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감정들은 아주 작은 주머니 안에 있는 돌멩이 따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해의 한 달이 허무하게 지나갔고 달력의 첫 장을 아무렇지 않게 뜯어냈다. 2월 1일이다. 나는 이렇게 새로운 선을 또 넘었다. 그래서 또 한 번 우울하고 또다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엄마 아빠 앞에서 아기처럼 엉엉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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