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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연주 Jan 29. 2024

파도가 오늘은 날 삼켰다.

숨 쉬는 것도 버거운 하루


‘코끼리’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 코끼리가 떠오르고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듯이, 내게 닥친 불행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생각날까 봐 그냥 내버려 뒀다. 감정을 억압하는 것도 힘들지만 반대로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 역시 만만찮게 버거운 일이다.




반년이 넘도록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 나 혼자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한계다. 회사까지 다니니깐 체력이며 정신력이 더 고갈됐다. 남편은 이 업보를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럴까. 이럴 거면 대체 결혼은 왜 했을까. 시부모님은 무슨 생각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너무 힘이 들 땐 눈을 질끈 감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바다에 갈 순 없으니 대신 마음속으로 바다를 떠올린다. 요즘 회사의 좋은 점은 다들 사무실에서 헤드폰을 떡하니 끼고 일해도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다가 보고 싶다. 근데 이제 더 이상 바다에 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원래 산밖에 몰랐던 나는 남편에게 바다를 배웠다. 바다가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지 그를 만나 알게 되었다. 타이만 한복판에 냅다 뛰어들었을 때 칠흑같이 새까만 바닷속은 마치 우주처럼 고요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고 이내 편안해졌다. 다시 그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할까 봐 바다에 못 가겠다. 근데 바다가 너무 보고 싶다. 내가 조금씩 계속 망가져 가는 게 무섭다. 오늘은 말도 두서없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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