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연주 Jan 27. 2024

우울증 환자가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

어쩌면 이런 말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와 멀어진 걸지도 몰라.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난 이 구절을 천천히 음미하며 받아들이려 애썼다.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예전의 밝았던 내 모습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어떻게든 낫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이렇게 매일 글을 쓴다. 약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먹는다. 남편이 아닌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려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아직도 힘들다. 평온한 일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다. 일단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취업은 했지만, 강도 높은 업무에 실시간으로 갈리느라 우울증 대신 번아웃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밤 11시에 퇴근하면 씻지도 않고 지쳐 쓰러져 자고, 다시 다음날 눈뜨자마자 회사로 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우울증에 걸려본 게 처음이니 정신과에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약을 타는 것도 내겐 다 처음 있는 일이다.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되어본 게 처음이듯, 내 주변 사람들한테도 우울증 환자를 곁에 두는 일은 처음이었다. 특히 약이라면 일단 부정적으로 보는 부모님은 내게 요즘도 약을 계속 먹냐며 그러다 혹시 약에 의존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옛날 분들이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동갑내기 친구 역시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의사도 약사도, 심지어 우울증 환자도 아니면서 내게 무슨 성분의 어떤 약을 먹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어찌나 나를 무겁게 옥죄던지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너는 강한 아이니깐 약 없이도 이겨낼 수 있어.”

“나는 널 믿으니깐 너도 널 믿고, 약에 너무 기대지 말고 조금씩 줄이려고 노력해 봐.”

“그 병원 괜찮은 곳이야? 믿을만한 의사야? 대부분 정신과 의사들은 약만 주고 땡이잖아.“


그들이 나를 걱정해 주고 신경 써주는 건 알지만 내겐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가서 이렇게 열심히 버티고 있는데 뭘 안다고. 너네가 뭘 안다고. 다리 없는 사람에게 강한 의지만 있다면 달릴 수 있다는 말처럼 가혹하게 들렸다. 내가 비관적인 게 아니라 우울증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지금은 제발 나를 좀 가만 내버려 둬 주면 좋겠다. 어떻게든 스스로 극복할 테니깐 아무 말이나 쉽게 보태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지금 삶이 내게 하는 말을 듣고 이해해 보려 애쓰는 중이니깐.


대신 밥은 먹었냐, 보고 싶다 이 두 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얼른 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고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웃고 떠들던 예전의 삶을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전 18화 딱 손톱만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