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시월) 요즈음 ‘천년약속’이라는 술이 부쩍 눈에 띈다. 작년(2005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에서 공식 건배주로 쓰여 널리 알려진 뒤 그리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술이 몸에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 좋다는 상황버섯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니 참살이(웰빙) 바람에 딱 맞춘 듯하다.
우리가 이걸 그냥 놔둘 수 있나. 소주와 섞는다. 비율이 중요한데 딱 절반씩이어야 가장 맛있다는 게 중론이다. 취향에 따라 소주량을 조금 늘리기도 하는데 이른바 ‘한오백년주’다. 작년에 에이펙(APEC)이 끝난 뒤 부산 식당가에서 발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빠른 속도로 경상·전라·충청·강원·경기도를 지나 서울까지 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폭탄주는 ‘맥주가 담긴 잔에 양주를 따른 잔을 넣어서 마시는 술’이다. 표준형(?) 폭탄주 석 잔에 담긴 알코올 양은 소주 반 병, 맥주 두 병쯤으로 알려졌다. 정확히 계산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대략 한오백년주 한 주전자로 서넛이 적당한 취기를 나눌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고.
느린 중모리 장단에 맞춰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임’한테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라고 읊조릴 때 우리 느낌은 분명 남다르다. 남(외국인)들 보기에는 청승맞고 낮게 가라앉기만 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말로 풀기 어려운 느낌 말이다. 그게 아마 한오백년 넘게 묵은 이런저런 한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졌을 거다. 그냥 한숨처럼 읊조리며 맺힌 것을 풀어내고 때론 당황할 정도로 어깨춤을 절로 들썩이며 오히려 즐거워지는 느낌.
답답하고 애가 타는 일이 많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집값이 월급쟁이들 애를 태우더니, 한번 치솟은 기름값은 국제시세에 상관없이 눈곱만큼 내릴 듯 말듯 시늉만 한다.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노후를 어찌 준비해야 할지 들로 고민이 태산처럼 쌓이는데 북한 핵실험으로 덤터기까지 썼다.
한오백년 같이 잘살아 보자는데 왜들 그리 성화인가. 여기저기 마주 앉은 사람들, 한오백년주에 타는 소주량이 자꾸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