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부부의 귀촌 일기(2) - 내가 만난 두 번의 계기
이전 글에서 아이들이 아팠던 덕분(!)에 진실한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승진, 성취, 인정에서는 벗어났으나, 정체되어 사회적으로 낙오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온갖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육아와 살림만으로도 버거운 그때,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협동조합을 만들었으며 아이 학교에서 운영위원회도 맡았다.
지나고 보니 내 건강, 내 가정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내 욕심이 이끄는 대로 화를 자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계기
결국 몸에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낮에는 아이들 돌보고 조합 일도 하고 밀린 집안일도 하면서, 주로 밤에 논문 읽고 페이퍼 쓰는 생활을 1년 넘게 이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힘에 부칠 정도였다. 그전날 뭘 잘못 먹었나 되뇌어봐도 특별한 건 없었고, 단지 너무 피곤해서 새로 구입한 종합비타민 한 알을 삼켰을 뿐이었다. 종합비타민의 문제인가 싶어 알아보니 천연성분의 영양재라 부작용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나 그전부터 몸의 이상신호는 간간히 있었다. 내가 그 신호를 무시했을 뿐!
피곤에 절어 몸이 지칠 대로 지쳤음에도 카페인의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스치곤 했었다. 그 직감을 존중했어야 했는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당장 해야 할 것들에 눈이 멀어 있었다.
잠깐 쉬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기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더 심각했던 건 얼굴이었다.
회색빛, 검은빛이 되어버린 얼굴색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환자였다. 만약 얼굴이 그리 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서라도 그 생활을 계속했을 것이다. 내 성향상.
얼굴을 내놓고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러야 했다.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희한했던 건 대학병원, 동네병원, 한의원 가릴 거 없이 병원 투어를 다니며 온갖 검진을 다 해봐도 뚜렷한 병명은 없었다. 수치상으론 모든 게 정상이었다. 어이는 없었지만 다행이었다.
외모의 변화와 줄어드는 몸무게로 인해 당시엔 처참한 심정이었지만 큰 병 없이 삶을 복기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 고난은 신이 나에게 준 최적의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아프게 되면서 스승 두 분을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동양의학을 전수해 주신 목사님과 올바른 명상의 길로 인도해 주신 유경선생님.
동양의학과 명상은 결이 비슷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양의학을 통해 우리 몸의 원리와 병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과 해결방법을 알게 되었고,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벗어나 진실한 순간을 알게 되었다.
병이 일어나는 원인은 에너지(기)의 부조화에서 비롯된다.
이 부조화는 타고난 운기체질과 칠정(일곱 가지 감정), 잘못된 습관, 외부의 사기 등에서 빚어진다.
동양의학에서는 침이나 약재, 음식으로 이러한 부조화를 바로잡지만,
명상은 몸에 병이 일어날 틈이 없는, 인식할 틈이 없는, 생각이 사라진 찰나(알아차림)를 통해
완전함 속에 순간순간 있게 되며,
진실한 나는 몸도, 마음도 아닌 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명상을 몇 해째 꾸준히 해 온 덕분에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고,
오히려 원래 가지고 있었던 지병(위장병)도 호전되었다.
명상을 통해 몸의 병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마음의 병(나의 성향, 생각 패턴 등)을 치유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치료법이 또 어디 있을까?
곁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본 남편도 지금은 명상을 함께 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남편이 명상을 접하게 된 이유를 소개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