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부부의 귀촌일기(3) - 남편의 계기
남편도 나와 비슷하다. 아니, 어떤 면에선 나보다 더 혹독한 과정을 겪었을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갑작스러운 계기를 만났지만,
남편은 꾸준히 아파오고 있었다.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언제나 회사 생활을 힘겨워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회사를 다니고, 겉으론 아무 문제없는 듯 승진해서 임원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지만, 성과 압박과 관계에서 오는 심한 스트레스로 남편의 일상은 하루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퇴근 후 술과 야식, 영화로 잠시 그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남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힘겨워하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스트레스라 회사를 관두라는 얘기를 레퍼토리처럼 건넸지만,
가장의 무게 때문인지 남편은 그럴 수 없었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편과 큰 일을 계획했다. 캐나다 이민!
남편이 목공에 취미가 있어 캐나다 목공 대학을 가기로. 학교를 졸업할 때쯤 현지 취업도 가능하고, 재학생 자녀들에겐 무료 학비의 혜택도 있었다. 남편은 대학 입학에 필요한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나는 이민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집을 내놓고, 자금을 확보하고, 살림을 정리하고...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편은 회사를 다니며 틈나는 대로 영어 공부를 해서 입학 조건에 맞는 영어 점수를 확보했고, 몇 군데 괜찮은 목공 대학에 원서를 내서 마침내 입학 허가를 따냈다.
매달 필요 경비를 월세로 충당하면 좋을 거 같아서 우리는 살고 있는 집을 월세로 내놨고, 마음에 드는 세입자도 구했다. 목공 대학 근처에 머물 집과 아이들 학교도 전부 알아봤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을 즈음, 세입자와의 계약 직전 남편은 돌연 마음을 접었다.
지금의 삶을 버릴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지만, 마음 한 켠에선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나도 내심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많았고, 외국에 나가면 언어 문제로 내 삶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영어에 자유로운 남편에게 기대는 삶일거고... 또 머리만 굴리다가 나이 들어서 목공으로 돈을 버는 게 만만치는 않을 터였다. 남편에게나 나에게나 녹록지는 않을 삶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우리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삶을 이어갔다. 캐나다 이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해결된 게 아니어서 남편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그러던 중 두 차례의 경고(?)를 만나게 된다. 한 번은 자다가 새벽에 서늘하게 일어나더니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평소 엄살이 1도 없는 남편이라 상태의 심각성을 알고 서둘러 응급실로 갔다. 두 번째는 남편이 혼자 운전하다가 몸 상태가 이상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119를 불렀다. 두 번 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쉽게 넘길 건 아니었다.
남편은 자발적으로 내게 명상을 배워보겠다고 했다. 그전까지 명상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다.
명상을 배우며 남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했을까?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아직 우리 부부는 명상 초보자라, 명상을 통해 나나 남편의 성향이, 패턴이, 삶이 바뀌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 후 남편은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되었다.
명상 선생님께서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 뿐, 자책할 필요도, 의미 부여를 할 필요도 없다 하셨다.
우리 부부는 이제 겨우 명상이 무엇인지 맛을 조금 보았을 뿐이고,
일상 속에서 명상을 실천하고 적용하는 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는 게 진실하고 올바른 삶인지 기준이 생겼고,
전처럼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더 이상 외부 환경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내면으로 향할 뿐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외부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자리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