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수행과의 관계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세례 받은 지는 꽤 되었지만 냉담 중이었다가 명상 스승님의 권유로 2년쯤 전부터 다시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종교가 에고 정신을 차리게 하고,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셔서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해야 했기에 성당을 다시 나갔고,
지금은 종교가 일상의 부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수행하시는 분들께, 그리고 일상을 조금 맑은 정신으로 지내고픈 분들께 참고가 될 거 같아
쑥스럽지만 저의 종교 루틴을 소개할까 합니다.
-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침 기도' 올리고
- 성경책을 읽습니다(매일 구약 세 장씩, 신약 한 장씩. 올해 초부터 시작했어요)
- 식사/간식 전 기도하고
- 오전/오후 중 '묵주기도' 30분 (출퇴근 이동 중에 주로 하고, 재택일 때는 빼먹을 때도 있습니다ㅠ)
- 잠자기 전 '저녁 기도' 올립니다
- 요즘은 '저녁 기도' 전에 '성령께 올리는 9일 기도'도 함께 합니다
(기도 내용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계속하려고 합니다)
쓰고 보니 별거 아닌 일상이지만,
저는 예전에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글을 보시는 한 분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보았습니다.
꼭 신자가 아니어도 기도는 참 좋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하는 기도도 매력적이지만,
가톨릭 기도문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신학적으로 정제된 표현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기도문을 읊조리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고 의미를 곱씹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은 잘 아실 거 같아,
'성령께 바치는 봉헌 기도'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아래 기도는 '성령께 바치는 9일 기도'의 부분으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리아와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9일간 기도한 성경의 장면(사도행전 1장 14절)을 본받은 것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부터 시작하여 9일간 매일 다른 은혜(슬기, 깨달음,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를 주제로 기도를 청합니다)
<성령께 바치는 봉헌 기도>
하느님의 영원하신 영이시여, 천상에서 증언하는 수많은 무리 앞에 무릎을 꿇고, 영혼과 육신을 합하여,
제 자신을 주님께 바치나이다.
주님의 눈부신 광채와, 주님의 흔들리지 않는 굳센 정의와, 주님의 사랑의 권능을 흠숭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제 영혼의 힘이요 빛이시나이다.
주님 안에 제가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나이다.
은총에 불충하여 주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일이 결코 없기를 간절히 원하옵고,
주님을 거스르는 미소한 죄에서도 이 몸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자비로이 저의 모든 생각을 살피소서.
제가 언제나 주님의 빛을 우러러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은혜로우신 감도를 따르게 하소서.
주님께 매달리며, 온 삶을 주님께 바치며 주님의 자비를 바라오니, 제가 약해질 때마다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부서진 발을 붙들고, 보배로운 피에 의지하며, 열려진 옆구리와 꿰뚫린 성심을 흠숭하며,
주님께 간구하오니, 흠숭하올 영이시여, 제 연약함을 돕는 이시여,
저를 주님의 은총 속에 지켜 주시어, 주님의 뜻을 어겨 죄짓지 않게 하소서.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성부와 성자의 영이시여, 제게 은총을 내리시어 언제 어디서나,
"주님, 말씀하소서. 주님의 종이 듣나이다."라고 아뢸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종교가 수행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명상 스승님 글도 함께 올립니다.
종교와 수행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실, 수행의 최종 목표지점인 '근원과의 일치'를
설파하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종교는 여러모로 최선의 수행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불경이나 성경 등의 경전은 모두 참자아를 깨닫도록 하는 수행지침서이며
진언을 독송하고, 기도문을 암송하는 행위는 별다른 노력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참자아(순수의식, 알아차림)에 머물도록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 사찰이나 성당은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신성한 힘이 있습니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공간이 품고 있는 높은 에너지 장이 있어요.
집구석에서 되지도 않는 명상 하겠다고 가부좌 틀고 있는 것보다 놀이터 가듯
그 공간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것이 기복 없는 수행 생활에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종교를 갖더라도 꼭 기억할 것이 있어요.
신을 나와 분리된 외부의 대상으로 놓고 믿으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망상이 됩니다.
에고가 만든 것은 모두 허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내가 신을 생각하고 있거나, 신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나와 신을 분리해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명백한 망상 속에서 신이라는 허상을 믿고 있는 것이죠.
그런 식의 종교는 갖고 있지 않는 게 백번 낫습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신성이 있고 불성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진짜 나'입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신의 자식이니, 어린양이니, 불쌍한 중생이니
하는 개념으로 '나'를 묶어두면
종교가 오히려 죄책감만 증폭시키고, 에고를 더 단단해지게 합니다.
오로지 깊은 묵상과 참선을 통해
신성, 불성과 하나가 되는 지점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 종교와 수행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둘의 시너지가 극대화됩니다.
- by 현존유경
출처 : https://cafe.naver.com/bhakti/3273 ('<질문>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