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방향타의 시작
오늘 밤은 자그마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야, 이때가 몇 (십) 년 전이지?! 계산이 바로 안 나오는데, 굳이 안 따지련다.
중학교 3학년 때의 나의 담임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도 엄청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 주임이었다. 여학생만 있는 학교에서 선 굵은 학생주임 선생님이라니, 안 어울리는듯하면서도 묘하게 각이 나오는 것도 같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중학교 시절을 보낸 셈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도 나는 그다지 존재감 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기질부터가 활달하거나 쾌활한 편이 아니어서 튀는 행동 한 번을 한 기억이 없다. 되레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면 몰라도 말이다. 이런 나에게 담임이자 학생주임 선생님이 학기 말에 나눠준 ‘생활통지표’ 한 장이 오늘 글의 주축이다.
특출 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나름 공부 잘하고 얌전한 축에 속했으니 설마 나쁜 말 있겠나 하며 서술식으로 적어주는 <종합의견>을 접한 순간, 응? 이게 뭐지? 앞뒤 문구는 까먹어서 모르겠고, 단 한 개의 단어가 날 몹시 당황시켰다. 그게 무어냐면 ‘인간미’다.
“이 학생은 인간미가 있고...” 이런 표현이었을 거다.
차마 선생님을 찾아가진 못하고 고대로 받아와서는 엄마한테 물었는데, 당시의 엄마도 당황스러웠는지 찬찬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냥 좋은 거라고만 해서 재차 물은 것 같은데 끝내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기억이 다 사라져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대화의 끝감정이 답답함이었던 건 맞는 거 같다.
지금도 의문이다. 담임 눈에 어떻게 보였길래 고작 열여섯의 학생을 설명한 글에 ‘인간미’를 넣은 건지. 그런데 혹시, 별 의미 없이 갖다 쓴 단어일 수도 있으려나.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비단 생활통지표 때문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큰 바다에서 이런저런 풍파를 만나 부딪히고 깨지고 다듬어지는 동안에 추구하고자 했던 미(美)가 바로 이것이니까. 인간미 있는 사람, 내 삶의 방향타인 것이다.
완벽을 부추기는 시대,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용기야말로 완벽을 향한 필수요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서툴다. 사소한 일에 괜스레 마음 뺏기고, 상대에게 다정하려다 되레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인간미가 그래서 필요한 거다. 불완전한 존재끼리 서로 보듬고 기대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사람 냄새로 가득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빌어 나의 오랜 스승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