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려진 시간> 을 보다
나도 성민이처럼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모르고, 유일하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옆에서 죽어갔다면? 오래도록 그 시간을,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온 성민이의 기분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성민이와 아이들처럼 모든 것이 멈춰진 시간 속에 갇힌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무도 내 말을 들을 수도 없고 누군가의 말을 들을수도 없으며 모든 것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나 혼자 자란다면.... 정말 미치지 않는 것이 대단할 것이다. 말도 안되는 시간 속에서 살았던 성민이와 아이들의 시간은, 겪을 수도 없지만 겪고싶지 않은 시간임은 분명했다. 어린아이의 생각 그대로 몸만 자란 그들이 지쳐가고 미쳐간 모습이 내 기억속에 강하게 남았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여주인공 수린이. 나이보다 성숙해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웃음을 드러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인 매력적인 아이, 수린이. 아무리 친구였어도, 좋아하는 남자아이였어도, 말도 안되는 일들을 털어놓는 성민이를, 수린이는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나는 수린이가 사랑을 받으며 살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내주었다거나 성민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린이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성민이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함. 이 순수함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크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함은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만든다. 성민이 또한 몸은 커버렸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어린 아이였기에 수린이를 믿었고 믿어줄 것이라고 생각한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커가면서 순수함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리는게 아니라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바보가 되지 않기위해 순수함을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어른들의 세계는 그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계가 아닌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영화는 신선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중간 타임에 조금 지루했던 것 빼고는 대체로 흡족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머리를 자른다거나 마지막에 결국 만나는 장면 등에서 <늑대소년>이 생각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