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디렉터 안젤라가 바라보는 세상
1557년 포르투갈은 명나라의 군대를 도와준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마카오 거주권을 얻었다. 그때부터 포르투갈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카오에서 그들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마카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포르투갈의 전통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탄생한 음식이 바로 매캐니즈 푸드 (Macanese Food) 다.
세월이 흐르면서 매캐니즈 푸드에는 포르투갈을 비롯해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요리법과 문화가 절묘하게 더해지고 융화됐다. 그래서 매캐니즈 푸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마카오만의 독특함을 품게 되었고, 2012년 마카오 무형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열두번째 컬럼의 목적지는 바로 마카오다.
마카오의 음식은 2012년에 마카오 무형문화유산로 등재되었을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유네스코 미식창의도시로 선정, 2018년은 자연스레 ‘마카오 미식의 해’로 선포되었다. 마카오는 동서양의 문화가 섞여서 발전된 곳인만큼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미식가들이 찾고 있고, 소박한 길거리 음식부터 최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요리에서 창의적인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 마카오가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미쉐린 스타를 갖고 있는 셰프이자 전설적인 셰프 알랭뒤카스 (Alain Ducasses)가 자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아시안 레스토랑을 마카오에 열었기 때문이다. 알랭뒤카스는 62세의 프랑스 셰프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비밀스러운 주방들을 탐방하고, 식재료를 탐구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영감을 얻은 그는 46년동안 쌓아온 그의 요리실력을 선보이고자 마카오를 선택했다.
첫번째로 찾은 곳은 모르페우스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 Voyages로 알랭뒤카스가 전세계를 여행하여 얻은 모든 영감의 집합체와 같은 곳이다. 전통 프랑스식 비스트로 요리부터, 페루음식, 일본음식, 미국의 정통 컴포트 푸드, 중동 음식, 그리고 심지어 한국 음식에서도 영감을 얻어 테이블에서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 레스토랑 중심에 있는 문어 벽화는 주변 환경에 맞춰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동물이자 각기 다른 촉수를 멀리 뻗어 다양한 문화의 여러 요소들을 모두 거머쥘 수 있는 것처럼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알랭뒤카스의 요리 세계를 표현한 그림이다.
아뮤즈부쉬로 고추 가지를 넣은 중국빵부터 시작하여 망고, 코코넛 밀크소스를 곁들인 태평양 대구요리, 일본의 와규 비프, 태국 레드커리 등 프렌치 요리 테크닉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생동감 있는 맛을 보여주었다. 특히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향신료나 허브를 사용해 마치 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문어 벽화 반대편에는 알랭뒤카스가 프랑스 출신 작가 레아 모프티와 협업하여 그린 식재료 벽화가 있는데 감귤, 망고, 코코넛부터 연근, 죽순 등 그가 사랑하는 식재료 100가지를 만날 수 있다. 알랭 뒤카스는 이 식재료를 바탕으로 브리야샤바랭과 같은 유명 작가와 철학가들이 남긴 요리에 관한 격언을 함께 적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파인다이닝은 미식의 최정상이다. 단순히 요리의 맛뿐만 아니라 식재료의 선별, 담음새, 요리에 담긴 스토리, 조명, 음악, 홀에서의 서비스 등 모든 방면에서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종합 예술이다. 알랭뒤카스는 이 모든 것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 Alain Ducasse at Morpheus 을 모르페우스 호텔 3층에 오픈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호텔에 오픈한 것은 마카오가 전 세계에서 처음이다.
손으로 불어서 만든 유리 램프를 시작으로 유리공예가 라스빗과 협업을 하여 만든 619개의 샹들리에. 프랑스 남서부 지역의 오크나무 그루터기를 얇게 잘라 디자인한 목재 플레이트 등 빛의 폭포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떨어지는 공간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애장하는 키친웨어 159가지를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어 그의 감각과 시간을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훤칠한 프랑스 출신의 홀 매니저가 자신의 키만큼 큰 버터를 직접 스쿱으로 떠서 서빙한 뒤 진귀한 요리들을 하나 둘씩 내오기 시작한다. 골드 캐비어를 곁들인 지중해산 감베로니, 무화과와 브리오슈를 곁들인 오리 푸아그라 찜. 낚시로 잡은 농어, 어린 당근과 생강을 곁들인 송아지 구이, 파리의 공방에서 생산한 커피와 초콜릿. 나또한 많은 레스토랑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빈틈없이 완벽한 요리를 먹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출처없는 식재료는 단 한가지도 없었고, 스토리가 없는 단 한가지도 없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요리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공연이었다.
레스토랑에는 오늘의 셀러라는 뜻의 까브드주 (Cave de Jour) 와인셀러가 마련되 있는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프랑수와 위탕의 작품때문인지 프랑스의 한 와이너리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와인셀러에 이어져있는 프라이빗룸으로 들어가니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만큼 밀폐되 있었지만, 리모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유리벽이 갑자기 투명해지면서 주방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셰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나의 프라이버시를 선택할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음식을 만드는 과정,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왜 이 재료를 선택했는지 등 식사를 하는 동안 지적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요리를 만드는 셰프와 서비스를 하는 홀뿐만 아니라 손님이 함께 만드는 소통형 예술로서 마카오는 미식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다음 컬럼에서는 마카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중국 음식과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글 | 사진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김유경 (필명 안젤라) 은 디지털 조선일보 음식기자 출신으로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KBS 라디오전국일주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테이스티코리아 유투브채널을 통해 한국의 맛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안젤라의 푸드트립 채널을 통해 세계 음식과 술, 그리고 여행지를 국내에 알리고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와 네이버 TV (http://tv.naver.com/angelafood) 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는 철학으로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