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리뷰 - 시작이 조금 늦었을 뿐이야

베를린 궁전 & 베를린 중앙역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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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궁전


어떤 면에서 보면 독일인은 참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깡그리 파괴된 땅 위에 도시를 다시 건설했다. K가 이의를 제기한다. “거기까지는 우리나라도 똑같은데?”


J가 차이점을 하나 짚어준다. “그러면 서울을 뒤덮은 현대식 고층빌딩과 아파트단지와 같은 방식을 택할 법도 한데, 마치 시간을 전쟁 전으로 되돌리려는 강박감이 느껴질 만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한 게 다른 점이야.” 덕분에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는 전쟁 전 구시가지의 모습을 되살린 곳이 많다. 아니, 사실상 대부분 그러하다.


J의 설명에 따르면 금융의 도시 프랑크푸르트도, 옥토버페스트의 도시 뮌헨도, 대성당의 도시 쾰른도 모두 전쟁이 끝난 뒤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한 것이라 했다. 서울에 비유하면, 최소한 사대문 안쪽은 조선이나 대한제국 시절의 모습으로 복원한 셈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지. 그게 베를린이야.”


K는 금세 수긍한다. “복구할 틈도 없이 도시를 둘로 갈라버리고는, 도시의 한복판에 흉물스러운 장벽을 세우고 총을 겨누는 마당에 복원은 무슨. 생존이 우선이지.”


독일 통일 후 뒤늦게 복원을 시작한 케이스도 있다. 가령, 동독에 속하였던 드레스덴은 독일 통일 후 21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원래 모습을 되찾은 케이스이다. 마찬가지로 동독에 속하였고 독일 통일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라이프치히도 21세기 들어 구시가지 복원에 박차를 가하였고, 지금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활동한 찬란한 중세의 품격을 되살렸다. 하지만 이들도 분단 시절 어느 정도는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은 뒤 통일 후 복원을 완성한 케이스에 속한다.


유감스럽게도 베를린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동베를린 지역의 유산 복원이 더딘 편이었다. 공산주의 정권은 군국주의를 혐오하였기에 군국주의 대표주자 프로이센의 유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없어져야 할 악습’으로 치부하였다.


“왕궁은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유적이잖아.” J가 베를린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런데 동독에서 ‘악습’으로 치부했으니 전쟁 중 파괴된 베를린 왕궁을 되살릴 필요가 없었어. 완전히 철거하고 그 자리에 이름도 의미심장한 공화국 궁전(Palast der Republik)을 지었지.”


통일 후 독일은 공화국 궁전의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초대형 건축물을 적당히 수리하여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사용해도 되었겠지만, 결국 철거하기로 했다. K는 어린 시절 뉴스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소식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화국 궁전이 남아있었다면 동독 정권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은 여길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졌겠지.” 아마 그와 유사한 감정이 작용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공화국 궁전을 철거한 뒤 베를린은 그 자리에 다시 프로이센의 궁전을 복원하기로 했다. J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상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는 전쟁 중 파괴된 옛 군주의 궁전을 복원했거든. 베를린도 똑같은 결정을 내린 거야. 남들보다 시작이 조금 늦었을 뿐이야.”


베를린 궁전(Stadtschloss Berlin) 복원의 첫 삽을 떴다. 워낙 규모가 컸고, 옛 궁전의 복원에 현대적 해석을 더하여 미래를 향한 메시지까지 담아 치밀하게 준비하며 추진했기에 만만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2013년부터 시작한 공사는 예정된 공기를 몇 차례 연장하여 2020년에 끝났는데, 또 하필 그때 팬데믹이 겹치는 바람에 정식 오픈이 미루어졌다가 2021년 문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바로크 파사드를 지나 현대건축 스타일의 회랑이 나타난다. K가 말한다. “현대적 해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응, 완전히 똑같이 복원하기보다는, 남들보다 시작이 조금 늦은 김에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을 담으려 한 것 같아.” J도 함께 내부를 둘러보며 이야기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베를린 궁전은 독일과 닮았다. 찬란한 과거의 영광,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단절, 그 상처 위에 다시 쓴 미래, 그걸 가능하게 한 기술력, 그 속을 가득 메운 콘텐츠까지. 남들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벌써 성큼성큼 먼 미래로 내달리는 그들의 발걸음에 앞으로도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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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원형을 복원한 베를린 궁전 외관 | 우: 현대적인 궁전 내부


베를린 중앙역


K는 베를린에 처음 도착한 날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베를린 기차역은 완전히 현대식이었지. 거기에는 과거를 기억할 연결고리가 없었을까?”


J가 K에게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of)의 한 쪽에 세워진 조형물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 유리창 너머로 옛 기차역의 잔해를 조금 볼 수 있다. 이것은 한때 하노버 지역으로 오가는 기차역으로 이 자리에 존재하였던 레어테 기차역(Lehrter Bahnhof)의 흔적이다. “딱 이만큼 과거를 기억하고 있어.”


베를린은 한창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19세기 말 워낙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였기 때문에 인구도 많고 산업도 발달하였다. 그래서 중앙역의 개념보다는 사방팔방으로 다니는 기차 노선마다 하나씩 기차역을 만들었다. 레어테 기차역은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분단 시절에는 서베를린으로 기차 타고 다니는 것 자체가 판타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기차역을 다시 만들 이유도 없었고,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다.


“카데베 백화점 갈 때 지나친 초(Zoo) 역이 통일 직후 베를린 메인 스테이션이었어. 봐서 알겠지만 아담하고 조촐해.” J가 중앙역에 들어서며 말을 잇는다. “그래서 통일 후 거대한 중앙역이 필요했고, 마침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를 준비하면서 이 중앙역을 새롭게 만든 거라고 해.”


베를린 중앙역은 구조가 특이하다. 남북 방향의 철로와 승강장은 지하에, 동서 방향의 철로와 승강장은 지상에 있어 십자 모양의 구조를 갖추고, 그 사이 몇 개 층에 넓은 대합실과 쇼핑몰이 자리한다.


J가 옛 여행의 기억을 떠올렸다. “잘 모르고 오면 골 때리는 기차역이야. 3층에서 지하까지 뛰어서 간신히 기차에 올라탄 적도 있었어.”


K는 십자 모양의 특이한 구조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무언가 발견했다. “햇빛이 지하까지 비추네.” 베를린 중앙역은 채광이 지하까지 도달하도록 설계하여 에너지를 절약하는 친환경 철학이 담긴 건축물이다.


J가 답한다. “이왕 늦게 시작하게 된 거, 최신 트렌드를 포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이것저것 접목해 진일보한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속삭인다. “그래도 나한테는 너무 복잡한 곳이기는 해.”


어느 대도시나 낙후된 슬럼이 생기기 마련이고 거기서 재개발이 추진되곤 한다. 그런데 하필 베를린은 장벽으로 나뉜 도시의 정중앙이 슬럼이었다. 변두리는 이미 개발되었고, 통일 후 도심을 재개발해야 하는 상황, 계획을 수립하기도 전에 이미 도시는 인구가 늘어나고 비대해지는 상황, 영리하게 대처하려면 고층빌딩을 그 자리에 채워 넣어 대도시의 위용도 자랑하면서 용적률을 늘리는 것이 효율적인 해법이다. 마침 도시의 정중앙을 개발하니 운도 좋다. 도심에 마천루가 즐비한 건 선진국 수도의 위용에도 걸맞으니.


하지만 베를린의 선택은 그러한 통념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통을 되살리는 기조 위에, 그렇다고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에만 매달리지 않고 현대적 해석을 추가함으로써 진보한 메트로폴리스로 새롭게 태어났다.

남들보다 시작은 늦었으나, 시작이 늦은 덕분에 난개발을 피하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대도시로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상처 위에 주저앉았다면 지금의 베를린은 없었을 것이다. 혹은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조급한 마음에 빨리 따라잡으려고 무리수를 두었다면 지금의 베를린은 없었을 것이다.


“분단이 베를린에게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역설적으로 분단이 초래한 상처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 기회가 되었어.” J가 내린 결론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일정 부분 유효할지 모른다. 분단이 축복이 될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남들보다 시작이 뒤쳐진 건 생각보다 큰 핸디캡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너무 늦었으니 지금 상황에 만족하자고 하는 것도 올바른 결론은 아닐 수 있다. 늦었지만 새로 출발할 의지만 있다면 베를린처럼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을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걷어차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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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중앙역 | 우: 레어테 기차역 기념 조형물

<리뷰를 보고 싶어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에서 숱하게 반공 포스터와 통일 포스터를 그렸고, <간첩 잡는 똘이장군>을 보며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통일을 TV 뉴스로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역사의 기록과 기억을 접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한 발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리뷰입니다. 특별히 베를린에서 본 통일의 리뷰를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전합니다.

(매주 화,목,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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