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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11. 2020

니체가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들으며 눈물 흘릴 때

운명애,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사랑이 되게 하라!

나는 가끔 어떤 자리에서 건배사를 제의할 기회가 있거나,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거나, 직접적으로 본인의 인생관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될 때면 니체의 '아모르 파티'(운명애)에 관해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아모르 파티'가 우리나라에서는 니체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아모르 파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내면 어떤 분은 웃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급기야 이렇게 말하는 분도 만나게 된다.

"아모르 파티, 나도 알아. 00 주무관도 김연자 좋아해? 트로트 좋아하는 구만~!"

대화가 이렇게 되어 버린다. 아, 이건 아닌데. 


삶의 철학자, 니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나? 

자신의 철학과 자신의 저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니체는 자신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스스로 리뷰하는 책에서 지금은 자신의 책이 단 네 줄도 이해되지 못하지만, 머지않아 인류는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책을 해석하기 위한 강의가 대학에 개설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 놀라운 선견지명과 예지력이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철학보다도 더 핫한 게 니체 철학이 아니던가?


그러나 니체는 예상했을까?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인 '아모르 파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EDM을 가미한 트로트로 불리게 될 줄을?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 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 이건우/신철 작사, 윤일상 작곡, 김연자 노래

트로트 가수, 김연자


원래 2013년 7월에 발표된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는 뜬금없이 2017년에  때아닌 인기를 얻었다.  놀라운 것은 니체 철학이 담고 있는 삶에 대한 긍정과 '아모르 파티'의 운명론을 아주 쉬운 대중적인 가사를 통해,  엄청나게 단순화해서 전달한다는 것이다. 니체가 부활해서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듣는다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니체 철학의 주요 개념 중에 하나가 '아모르 파티'(amor fati, amor는 사랑, fati는 운명), 즉 '운명애',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의 삶의 아무리 괴롭고 비참할지라도, 또 그 비극적인 삶이 심지어 영원히 반복될지라도 이 운명을 거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긍정할 것을 요청했다.  늘 신경증과 두통에 시달렸던 니체 자신의 삶이 그러했듯이 엄청난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니체는 긍정의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 엄청난 고통의 순간에서도 니체는 건강한 상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고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위대한 책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amor fati!  

이제부터는 그것이 나의 사랑이 되리라!
나는 추악한 것에 대해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불평하는 자에 대한 불평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외면하기,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부정이 되리라!
그리고 매사에서, 큰일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언젠가 때가 되면 나 단지 긍정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  

그렇다! 나 이제 필연적인 것만을 사랑하리라!
그렇다! 운명애가 나의 마지막 사랑이 되리니!

- 니체 < Die froeliche Wissenschaft 즐거운 학문>


어빈 얄롬의 책 <니체가 눈물 흘릴 때>와 튜린에서 말을 부둥켜 안고 울던 니체



니체에게 아모르파티는 인간이 겪는 모든 삶과 경험, 그 삶이 주는 고귀함과 비천함, 삶의 무의미와 의미를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니체의 '아모르 파티'는 자신의 고통을 사랑하고 자신의 괴로움을 적극 수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한계와 제한된 능력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메우기 위해 미래의  더 큰 욕망을 희망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운명을 긍정하고 단순한 현실을 바라는 것을 통해 좁히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니체의 운명애가 운명을 적극 긍정한다고 해서 운명을 무조건 체념하고 받아들이라는 숙명론, 허무주의와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니체의 운명애는 고통과 모순으로 가득한 삶이라도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받아들여라'가 아니라,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라'였다.   


지금 여기서 삶의 의미를 물어라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아모르 파티'가 21세기 대한민국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노래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될 운명이었음을 니체는 알았을까? 니체가 무한히 긍정하고자 했던 삶,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피하려 하지 않았던 운명 속에는 이렇듯 운명의 아이러니와 반전이 숨겨져 있는 것인가? 니체 철학의 핵심인 '아모르 파티'의 운명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꿈꾸며 오늘, 여기의 삶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여기 우리 삶의 과정 곳곳에 숨겨진 아이러니도 적극적으로 수긍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물어야 한다. 지금 여기의 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인가? 나는 지금 여기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그것이 니체의 '아모르 파티'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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