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츠뎀 Oct 13. 2020

에놀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영화 <에놀라 홈즈>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_실화와 영화 02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Enola Holmes>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의 여동생이라는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가 자신의 16번째 생일날 사라진 엄마를 찾아 떠난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사실 영화의 원작은 낸시 스프링어의 연작 소설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 시리즈' 중 하나인 <사라진 후작> 편이다. 영화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다. 주인공 에놀라는 극 중에서 홈즈 가문의 탐구 정신과 추리력을 물려받고 엄마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로부터는 당대 여성에게 강요된 규범적 제약을 뛰어넘는 남다른 가정교육을 통해 독립적인 여성으로 길러진다. 집안의 가부장으로서 경제권과 대소사 결정권을 장악한 큰 오빠 마이크로프트가 엄마의 실종 이후 에놀라에게 '신부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전통적 미덕과 봉건적 순종을 강요하자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삶을 선택한다.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엄마는 왜 갑자기 사라져야 했나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가 가정을 버리고(?) 사라진 이유는 여성 참정권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큰 오빠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강요하고, 작은 오빠 셜록 홈즈(헨리 카빌)가 묵인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거부하고 에놀라가 참정권 운동을 위해 집을 떠나야 했던 엄마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목숨을 구해주는 남자 주인공 듀크스베리 자작 역시 여성 참정권 관련 의회 표결에서 결정적 한 표를 행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과 싸우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사라져야 했고, 유도리아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딸 에놀라가 더 이상 여성이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유도리아는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자신의 딸 에놀라가 스스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부닥쳐야 할 시대적 한계를 직접 대면하고 해결할 수 있기 소망했던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에놀라와 함께 였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서사는 역사적으로는 그 기원이 프랑스 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분제의 억압과 굴종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평등, 박애라는 보편적 인권 개념의 등장이라는 프랑스혁명의 결과는 사실 '보편적이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는 혁명의 결과 얻어진 '시민과 인간의 권리'가 소수 자산계급 남성만의 참정권 보장으로 제한되고 '인간'의 범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음을 알게 되자 여성 참정권의 보장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그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며 여성의 시민권과 투표권 획득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다수의 남성 혁명가들은 "대체 언제부터 여자가 가정과 아이들의 요람을 돌보는 소중한 의무를 내팽개쳤던가?"라고 여성 혁명가들을 꾸짖었고 마침내 1793년 급진 좌파 혁명세력 자코뱅 파는 올랭프 드 구주 '자신의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단두대로 처형한다. '혁명과 톨레랑스의 나라, 평등과 인권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모든 여성의 참정권은 세계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이 되어서야 보장되었고, 이는 모든 프랑스 남성에게 참정권이 보장된 1848년으로부터 96년 만의 일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이 가장 빨리 투표권을 획득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였다. 북유럽 선진국이라는 핀란드는 1906년 에, 미국과 대다수 유럽 국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대부분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의 경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여성 참정권이 헌법으로 보장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서 보통선거권을 규정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투표권이 보장되었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5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다. 


영화에서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가 참정권 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집을 떠나야 하고 모종의 테러활동을 준비하는 비밀 단체에 가담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 후반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이미 상당히 격화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만 해도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에 딸린 부속물이나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는 매우 불손하고 과격한 사상으로 취급되는 시대적 분위기였다. 처음부터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폭력 사태와 연관되고 과격한 양상을 띈 것은 아니었다. 1865년에 맨체스터에서 영국 최초의 여성 선거권 운동단체가 탄생했고, 1867년 유명한 자유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하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단체들은 1870년대에도 여성 참정권을 옹호하는 청원서나 탄원서, 공개서한 등을 의회에 보내는 방식으로 활동했지만 오히려 남성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자 일부 상류 계층의 여성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격렬한 의사표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애멀린 팽크허스트와 여성 참정권 운동

이에,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반란자가 되겠다.(I'd rather be a rebel than a slave)"며 에멀린 팽크허스트 같은 여성 지도자들은 급진적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고, 서프러제트라 불리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상점이나 공공건물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며 기물을 파손하기 하고, 심지어 여성 참정권 도입에 반대하는 의원의 저택에 방화하기도 했다. 이들은 투옥된 뒤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감옥 속에서 단식 투쟁을 하거나 강제 급식을 거부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왕의 경주마가 출전한 더비에서 달리는 말에 스스로 몸을 던져 갈가리 찢겨나간 것도 바로 이때였다. 결국, 이들 참정권 운동가들의 과격한 시위와 투쟁이 서서히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고 마침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8년이 되어 모든 영국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이 부여된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여성의 노동력이 필수적이 된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사회참여활동이 늘어난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진보주의자들조차 왜 여성의 권리에는 인색했나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을 성공시키고 국왕을 처단함으로써 공화주의의 전통을 확립한 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여성 참정권 도입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후진적이었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진보진영이나 혁명세력들이 오히려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더 가혹하게 억압적이고 반동적이었던 역사적 사례를 쉽게 발견된다. 프랑스 급진 혁명세력인 쟈코뱅파가 공공영역과 정치의 장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던 것처럼 미국 독립혁명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도덕의 타락과 문제의 모호함을 방지하기 위해 여성은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 난잡하게 섞이지 않아야 한다." (노명순 역, <젠더의 역사> 219쪽에서 재인용)며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했다. 결국 미국에서도 영국에서와 유사하게 여성 참정권 운동이 격화되면서 쇠사슬 시위, 단식 투쟁이 빈번했고 마침내 1920년 수정 헌법 19조에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정권이 규정된다.   




달리는 경주마에 뛰어든 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 1913년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해 남성들의, 특히 소위 진보적이라는 남성들의 거부감이 컸던 데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단순히 정치적 권리의 획득을 위한 여성들의 정치제도적 투쟁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의 가치와 문화체계를 뒤흔든 사회혁명적 요소가 내포되었기 때문이다. 유럽 상류 사회 여성 중심의 여성 참정권 운동의 한계에 대해 독일의 사회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emburg는 냉소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

그의 이런 비판은 당시 시대적 한계 속에서 진행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계급적, 인종적 한계를 고려해 볼 때 일면 타당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일단 불붙기 시작한 여성 참정권 운동은 단순히 정치 영역, 공공영역에서의 평등권에 대한 주장에 국한되지 않고,  공공영역과 사생활 영역  모든 분야에서 여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확대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독립된 주체로서 자신과 세계를 재해석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도덕과 사회적 가치를 자신들의 생활과 직업에서 구현하려는 욕구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 혁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너머

영화에서 에놀라가 혼자서도 문제와 답을 찾아 해결하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엄마 유도리아는 미리 과학적 분석과 추론을 에놀라에게 가르치고, 남성의 장식물로 소모되기 위한 화장법과 신부 예절 대신에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최소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을 익히게 한다. 그 결과 에놀라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차별과 억압을 거부하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세상에 나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주며 함께 연대할 많은 여성 운동가를 만나게 된다. 여성이 남성의 부속물, 혹은 시대의 장식물이 아닌 고유한 권리와 욕구, 능력과 권한을 지닌 독립적 주체로서 혼자 서게 되는 순간 에놀라 Enola는 혼자가 alone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역사로 살펴보는 선거권 이야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