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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n 07. 2024

모닝 커피와 '사내 정치'의 세계

괴물은 누구일까 _04

사람의 뇌에 돼지의 뇌를 이식하면, 
그것은 사람인가요, 돼지인가요?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중에서



태초의 간식 사건이 있던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분 중에는 유달리 '사내정치'(社內政治)'의 달인이 한분 있었죠. 사내정치(社內政治)는 '회사 내에서 자기 파벌을 만들어 자신의 회사 내 입지를 공고히 하는 행위"를 말하죠. 특별한 성과를 보이거나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닌데 높은 분들에게 잘 보여 주로 '윗분'들에게는 평판이 좋은 동료를 일컫습니다. 최근 한 기업정보 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직장에서 이른바 '사내정치'를 경험한다고 답했습니다. 사내정치에 능통한 직장인은 동료들에게는 '밉상'으로 보여도 주로 윗사람들로부터는 좋은 평판을 얻고 있죠.  그 이유를 들어보면 특별한 이유나 성과와 능력이 탁월해서라기 보다는, 회식에 꼬박꼬박 잘 참여하고, 잘 웃으면서 윗사람을 대한다는 이유예요. 사내정치와 '사회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서 어디까지를 사내정치로 봐야 할지 고민이 되긴 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성과보다 인간관계가 더 우선시되면 이건 사내정치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인사이동으로 지난 해 초부터 p와 같은 과에서 근무하게된 J는 사내정치의 달인으로 평판이 자자했죠. 이분의 별명은 '용수철 J'예요. 간부들님이 가끔 부서에 예고 없어 들를 때 누구보다 재빨리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커피나 음료를 접대하는 놀라운 민첩성을 보이기에 생긴 별명이죠. 평소엔 이상 증세가 없는데 주로 남자 간부님들 앞에서는 이상하게 갑자기 혀가 짧아지고, 불필요한 웃음이 많아져요. 


예를 들어, 회사 간부님들이 한가하실 때 아침부터 사무실을 방문하면,

"국땅님, 아메리카노랑 라떼 중에 어떤 커피 도와하실지 몰라서 두 가디 다 가져와 봐쪄요."

요렇게 말하며 기민한 커피 대접 신공을 보여주죠. 

그래서인지 윗분들은 직함 대신 J의 이름을 부르며 붙임성이 좋다고, 

친화력이 좋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 00이 어디갔어? 우리 00이가 타주는 커피가 역시 제일 맛있어." 하고 너스레를 멈추지 않죠. 


J의 그런 친화력(?)과 사회성(?)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J는 그런 친화력과 애교를 원만한 직장생활과 대인관계에 있어 자신만의 효과적인 전략 자원으로 여길 겁니다. 앳된 신규 직원 때부터 줄곧 자신만이 가진 그 전략 자원의 효능감과 파급력을 경험했을 것이구요.  그런데 어느덧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높아지면서 J가 사내정치와 애교로 쌓아온 인맥과 연고는 회사 내에서 자기 파벌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사내 핵심부서 적재적소에 배치된 지인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 대한 나쁜 평판을 만들어 전파하는 데에도 능통해집니다.  급기야는 사적으로도 이른바 조직내 '윗분'들을 움직일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 영향력을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발휘하기도 하죠.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겁니다. 어느덧 J와 같은 사내정치의 달인들은 윗분들을 움직여 자신이 맘에 들지 않거나,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동료 직원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된 겁니다.



간식 이슈 이후  P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했던 그 K 계장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P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후 P를 집요하게 괴롭힌 인물이 바로 이런 사내정치의 달인인 J였습니다. 태초의 간식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안 있어, 사내 자유게시판에 직원들의 무리한 간식 구입 요구에 힘들어 하던 어느 직원이 p와 유사한 고충을 토로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p는 자신의 사례를 댓글로 짧게 적는 것는 것으로 공감을 표했는데, 이른 본 그 K 계장님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는지 빈정대는 댓글로 P를 조롱하며 다시 한번 공격합니다. 


아무튼 그 태초의 간식 사건 이후, 간식 이슈는 당시 사내에서 빅 이슈가 되었죠. 심지어 매년 초 개최하는 <주요 업무추진회의>에서도 총장님이 이 간식 문제를 언급하며, '향후 모든 과는 시대에 뒤떨어진 간식 문화를 자제하기 바라며, 간식 문제로 동료직원을 괴롭하지 말라'는 훈시를 내릴 정도였죠. 사실, 직장에서 과도하게 간식에 집착하는 게 정상은 아닌거죠. 어찌보면 변칙적인 예산운용으로 간식 구입비를 마련하는 것도 문제구요. 그 때마다 서무들은 골머리를 앓아요. 어떻게 회계서류를 문제 없게 꾸며서 간식비를 마련해야 할지 말이예요. 그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서무에게 자신들 입맛대로 원하는 품목을 사달라고 조르는 게 갑질이 아닐수 없죠. 더욱이 보통 연차 낮고 직급 낮은 신규직원이 서무를 맡는 우리  조직에서 간식구비 문제로 상급직원이 하급직원 괴롭히는 것은 마땅이 없어져야할 후진적인 조직문화예요. 



그날 이후, 간식 비교 자제를 요청하는 P의 메일에 대부분 직원들은 자의든 타의든 어쨋든 외관상으로는 자제를 보여줬어요. 어떤 직원은 자신이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기도 하고 미안해 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유독 그 K 계장님과 모닝 커피 조공에 맛들인 J만은 달랐습니다. 이후 그 계장님은 사사건건  P에게 시비를 걸었고, 갈등을 유발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J는 겉으로는 웃으며 P에게 "주무관님, 고생 많으시죠." 라며 위로를 가장하며, 뒤로는 그 계장님과 함께 P에 대한 험담과  부정적 평판 퍼뜨리기에 주력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J가 그 간식 이슈 때 생긴 P에 대한 반감으로 향후 1년 내내 은밀하고 집요하게 P를 괴롭히며 중앙 부처에서 쫒아낼 궁리를 할 줄을.  그리고 우리 조직의 감사과는 후진적이고 구태의연한 이런 '간식 문화'를 개선하는 앞장서기 보다 오히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을 감찰하고 쫒아내려 하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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