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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n 04. 2024

그렇게 가부장(家父長)이 된다

괴물은 누구일까 _03


지나친 간식 비교를 삼가 달라는 P의 메일에 유일하게 공격적인 답신을 보낸 그 5급 계장님 K는 '직장 내 가부장(家父長)'의 전형이었죠. 공식적으로 부서를 대표하는 4급 과장님보다 실질적으로 직원들에게 더 우월적인 권력을 행사했어요. 5급 계장으로서 직급은 같았어도, 남자라는 이유로 혹은 선임이라는 이유로 다른 계장님들보다 더 절대적인 발언권을 행사했죠. 이분이 우리 기관의 중앙 부처로 오게 된 데에도 우리 조직의 부패 구조가 한몫을 합니다. 능력과 성과에 따른 인사가 아니라 연고와 라인에 따른 인사가 만성화된 덕분에 이분도 중앙 부처로 올수 있었죠. 바로 이분은 우리 조직의 최고 권력자인 사무총장님과 같은 지역이라는 '지연'에 의해 발탁되어 중앙 부처에 오게 된, 이른바 새로운 '총장 라인'이었던 것 입니다. 가족들은 지방에 남겨 둔 채 혼자 우리 조직 중앙 부처에서 근무하게 된 K 계장은 테니스를 좋아하는 고위 간부들과 함께 운동을 즐기며 관계를 돈독히 했죠. 근무지와 가까운 관사에 기거했기에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늦게까지 운동하다가 퇴근하며 초과 근무수당도 확실히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P가 자기 카드로 주문한 피자를 직원들이 함께 먹던 과장님 생일 파티 자리에서도 유일하게 따로 혼자 삐져서 컵라면을 먹던 독특한 분이었죠. 물론 평소 하던 대로 국물만 남은 컵라면 용기를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남겨둔 채 자리를 떴죠. 21세기가 동튼 지 한참 지난 2023년에도 자리 정돈은 그 부서에서는 늘 여직원들의 몫이었어요.  '나라를 구할 생각을 하기 전에 자기 방부터 치우라'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분이었죠. 벌써부터  자기  뒤처리는 다른  직원이 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것을 당연시하는 분이었죠.


그분은 자기 의견이 채택되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쉽게 자존심에 상처 입고 화가 나는 듯했어요. 예를 들어 직전 사회복무 요원을 관리하기 힘들었다는 이유로 그 계장님은 사회복무 요원 배정에 반대했죠. 하지만 신생과에서 부족한 인원으로 이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복무 요원 같은 일손이 절실했고 결국 다른 직원들은 모두 사회 복무요원 배정을 반겼습니다. 하지만 그 계장님만은 "에이 씨, 자리도 없는데 사복을 어디다 앉힐 거야!"라며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죠. 아마도 그래서 해당과의 서무로서 사회복무 요원의 도움이 가장 절실했고, 그러므로 당연히 사회복무요원을 가장 반겼던 P에게 반감을 많이 가졌던 듯합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을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를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노골적인 간식 품평을 자제해 달라는 p의 전혀 무례하지 않은 메일을 무례하다고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거 아닐까요? 서무 담당 직원을 직원들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간식을 구비해야 존재 쯤으로 생각하는 그분은 자신들의 발언이 서무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사려하지 못했던 거죠.




이분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기행은 그뿐만이 아니었죠. 간식 사건 이후에도  자신이 최애 하는 커피 브랜드를 사달라고 수시로 퉁명스레 쪽지를 날리는 일, 엑셀 서식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입력해서 제출하지 않고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작성한 메모지를 붙여놓기, 업무상 보고자료 제출 기한을 넘겨 이에 대해 문의를 하면 자신은 이미  제출했다고 "잘 찾아보세요"라며 면박주기(절대 제출한 적이 없음에도)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간식 사건 이후, 이분의 P에 대한 갑질 괴롭힘이 본격화했습니다. 

P가 없는 자리는 물론, P가 있는 자리에서도 다 들리도록 폭언과 험담을 하는 일이 잦았죠. 

부서에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일하는 P를 지목해,

"저 봐, 엉덩이가 무거워서 빨리빨리 커피 타올 줄도 모르고!!"라고 망언을 하거나, 

자기 계 직원들과 사담을 나누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나는 이제 H과(P가 이전에 근무했던 부서)가 싸 놓은 똥이나 치우러 가야겠다."라고 하기도 하고,

자기 계 소속 직원이 병가 보고를 하지 않고 결근한 것에 대해 애꿎은 P를 탓하며,

"에이 씨, 안 나오면 안 나온다고 알려줘야 할거 아냐?"라고 일부러 P의 귀에 들리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등 폭언을 서슴지 않았죠. 




안타까운 것은, 이분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폭언과 만행을 자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상의 절반이 그러하듯, 그 과의 절반을 차지하던 여성 직원분들의 인내, 묵인, 방조, 동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동료 여성 직원 분들이 그 계장님의 성차별적인 폭언과 행실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대다수의 여직원들은 침묵했고 심지어 '용수철 주무관'으로 불리던 한 직원은 "와, 계당님 됴아하는 루카스 나인 커피 왔땅~~!."라며 아양과 애교를 발사하기도! 

성차별적이고 전근대적인 조직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는 P와 같은 직원이 없다면 K 계장은 아마도 더 고압적인 '직장 내 가부장'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의 가부장적 행실은 더욱 노골적으로 많은 직원들을 괴롭힐 것이고요.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권위적이고 성차별적인 근무환경에서 P는 고립되었고 그러므로 외로웠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라야 같이 H과에서 넘어온 계약직 직원과 사무보조 밖에 없었죠.

허나 직장 내에서 K-가부장제를 노골적으로 구현하는 K 계장님의 만행은 폭언과 갑질 괴롭힘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고수하려는 견고한 '직장내 가부장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P를 축출하려는 음모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단지 문제 제기만으로도 자신이 지키려는 낡은 가부장 공동체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K 계장님의 음모에 생물학적으로만 같은 여성인 '용수철 주무관'은 단지 묵인, 동조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담했더군요. 이제부터 단순한 '간식 이슈'에서 촉발된 그 1년 간의 집요한 갑질과 괴롭힘의 전모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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