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누구일까 _06
토마스 만은 <토니오 크뢰거>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간단히 한마디로 규정해 버리는 것을 가리켜 "당신은 (그런 식으로) 처리 돼버렸군요!"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처리'해버리면 화를 낼 거면서 남들은 쉽게 '처리'해 버린다.
-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중에서
지난해 초기 J과에서 있었던 '간식 갑질'이 이렇게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저는 우리 감사과의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조직의 공적 권한인 감사과와 감사권은 이 '간식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게 아니라면 개입해서는 안 됐었죠. 이 '간식 이슈'는 갑작스레 조직 개편으로 생겨난 신생 부서에서 다양한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여 새 출발을 하는 상황에서 생길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갈등이었던 것예요. 그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이 새로운 체험과 경험을 하고 보다 나은 조직문화에 대해 사유할 기회가 될수도 있는 문제였죠. 하지만 우리 감사과는 이 자연발생적인 갈등을 그저 금기시하고 그저 '처리'하는 데 급급했죠.
애초부터 감사과는 이 '간식 갑질'의 원인을 규명하고 갑질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이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죠. 그저 '간식 문화'를 둘러싼 갈등이 보기 싫고, 그 갈등을 '분란'으로 보았고, 그래서 관련자 중에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추방'함으로써 이 문제를 '처리'해버리고 싶었던 듯해요. 이런 관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조직의 감사과가 이렇게 무리해서 이 문제를 신속하고 단순하게 '처리'해서 지키고 싶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건전한 조직문화? 품위 있는 공직생활? 복무기강 확립?
'태초의 간식사건' 이후 그 '동네'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사실 서무에게 지나치게 간식을 구비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이 구태의연한 간식 문화는 우리 조직에서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심심치 않게 사내 자유게시판에 이런 간식 문제 때문에 고충을 토로하는 서무들의 글이 올라오죠. P가 직원들에게 지나친 간식 비교를 삼가 달라는 메일을 보내고, 이에 그 '사발면 K 계장'이 공격적인 답글을 보낸 직후에도 유사한 글이 자유게시판에 떴었죠. 이 글을 본 P는 답답한 마음에 댓글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발면 계장님'은 다시 등판하시어 "동네 창피하게 이런 데까지" 글을 올린다며 댓글로 P를 공격합니다. 이때 우리 '용수철 J 주무관'도 등장해서 예의 그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사발면 계장님' 편을 들며 "간식 준비 안 하려면 일이라도 하라'는 둥 난데없이 P를 일 안 하는 직원으로 매도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간식 갑질은 이제 '전쟁'이 되었습니다. 구태의연한 간식 문화에 이의를 제기한 P와 이런 문제제기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반감을 드러낸 몇몇 직원들 간의 '문화 전쟁' 말입니다. 그리고 간식문제로는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렵자 이분들은 P를 '일 떠넘기는 직원'으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메세지는 공격할 수 없으니 메신저를 공격하면서 문제틀을 왜곡시키는 것이지요. 지나친 간식 구비 요구는 공감을 얻기 힘들자 근거없는 세평과 악의적인 인신공격으로 P의 인성과 업무태도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자신들이 간식 문제로 P를 괴롭혔다는 것은 도무지 부인하기 힘들자 P에게 '일 안 하는 직원'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상반기 인사이동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분들 중에서 그 '사발면 계장'과 "용수철 주무관'은 P를 공격하기 위해 사적인 인맥을 이용해 우리 조작의 감사과와 인사과까지 동원했더군요.
소문이 빠른 이 '동네' 즉, 우리 조직의 중앙 부서에서 이 J과의 '간식 이슈'는 고위 간부님들 귀에도 들어간 모양입니다. 자유게시판에서의 '댓글 전쟁'이 있은 직후 우리 조직의 대표이신 사무총장님도 "이런 구태의연한 간식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라"는 지침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힘에 의한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간식 갑질로 P를 괴롭히던 직원들도 더 이상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죠. 유일하게 그 '사발면 계장'만은 꿋꿋하게 자기 취향에 꼭 맞는 커피, '루카스 나인 라떼'를 사달라는 주문을 당당하게 이어나갔습니다. 이런 개인적 주문이 하급 직원인 P에게 자신의 작은 권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P의 이 메일에 불쾌함과 무례함을 느끼고, 이 자유게시판 문화전쟁에서 '창피함'을 느꼈다는 그 감정 기복이 심한 '사발면 계장'은 이제 같은 사무실에서 P와 공존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을 강구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선택은 바로 P를 중앙에서 축출하는 것이었죠. 이를 위해 '사발면 계장'은 이후 사사건건 P의 의견에 반대하고, P에게 무리한 업무 분장을 수용하라고 요구합니다. 당시 J과는 원래 2개 과에서 하던 업무를 조직개편으로 한 개 과로 통합하여 운영하면서, 직원은 오히려 축소된 상황에서 업무량은 과도하게 많아진 상황이었죠. 이 상황에서 상시 업무만으로도 이미 과부하 상태인 P에게 과도한 업무를 분장하고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험담하는 일이 잦았죠. 이런 무리한 업무분장에 대해 부서장인 과장님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았고, 간식문제로 P와 관계가 불편해진 몇몇 직원들은 이를 빌미로 P에게 '일 떠넘기는 직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입니다. 당시 신설된 과라는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과도한 업무 때문에 죽어 나가는 것은 오직 회계와 서무 역할을 맡고 있는 P였고, 연초여서 아직 다른 업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죠.
'사발면 계장'의 지속적인 모욕과 폭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참고 있던 P는 지독한 모멸감에 직속 계장님과 면담을 요청하여 이런 상황을 전했지만 해당 계장님은, "어려움과 괴로움은 이해하지만, 4월이 되면 그 계장님은 우리 과에서 나갈 거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라."는 조언을 해줄 뿐 어떤 대책도,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죠. 그래서 P는 '사발면 계장'과 일부 직원의 집요한 갑질 괴롭힘을 참으래서 그저 참았죠. 그러나, 바로 이게 가장 큰 패착이었죠. 오히려 이때 그분들의 갑질 괴롭힘과 폭언을 신고제보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P는 몰랐죠. 무엇보다 공정하고 엄정해야 할 우리 조직의 감사 시스템, 인사 시스템이 이렇게 쉽게 개인적인 사감에 의해 움직이고, 사적 연고에 의해 우리 조직의 공적 권한인 감사권이 동원돼 부당하게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참는 자에게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갑질 괴롭힘 피해자가 감사 대상자가 되고, 업무 기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4월이 되어 P에게 집요하게 폭언과 험담을 하고,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사발면 계장'도 예정 대로 해외 파견을 나갔고, J과에는 다른 직원들이 더 충원되면서 P는 모욕적인 갑질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한때 '간식 갑질'로 다소 불편했던 초기 멤버들과도 아무 문제 없이 웃으며 잘 지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연초에 발생한 간식 문제와 업무분장과 관련된 직원들 사이의 갈등과 불만은 조직개편으로 인원은 축소되고, 업무는 과도하게 늘어난 상태에서 신생과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미세한 문제였죠.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함께 일해야 하는 신생 부서에서 점진적으로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 할 숙제였던 거죠. 이런 작은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결정적 원인은 개인적인 성격 차이가 아니라 무엇보다 직원들의 갈등과 불만을 제대로 관리하고 대처하지 못한 관리자의 갈등 관리능력 부족, 업무에 대해 이해 부족, 소통능력의 부재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우리 조직의 감사 부서, 인사부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관리자 이런 능력부족이나 전근대적인 조직문화에 집착하는 일부 직원들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을 '배제'하고 '추방'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갑질 괴롭힘 가해자들이 은밀히 조직의 공식 권한인 감사권을 사적으로 동원했죠. 감사과는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이런 갑질 괴롭힘 가해자들의 음모에 가담함으로써 '갑질 감사'의 오명을 남겼습니다. 갑질 괴롭힘 피해자를 '문제적 인물' 혹은 '부적응자'로 몰아 축출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바로 2023년 상반기 인사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피해자를 문제인물로 둔갑시키는 과정에 바로 그 "사발면 계장"과 "용수철 주무관'이 적극 가담합니다. 물론 은밀하게, 또 집요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