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는 책을 사실 다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의미있는 인풋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단어 수준의 발화도 안되는 아가가 문장 가득한 책을 읽는 것이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한글카드를 구입했다.
밤마다 혼자 말도 안되는 상황극을 연출하며
"엄마랑 단어카드 읽을 사람~"하고 말하면 아가는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함께 하기도 하고 자기 할 일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구입한 단어 카드 한 세트를 열심히 읽어댔다. 이 역시 우리 아가가 듣고 있다는 확신이 든 계기가 있었다. 본채 만채 하며 자기 일을 하던 아가가 유독 차 종류 카드를 읽을 때 눈길을 주는 것 같더니 어느날 보니 소방차, 구급차, 자동차와 같이 자기가 관심있는 카드만 쏙쏙 뽑아다가 자기가 애정하는 붕붕카 트렁크에 넣어둔 것이다. 얼씨구나 신이 나서 '소방차가 있네. 불을 꺼 주는 자동차야'라든지 '아픈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는 구급차다!'와 같은 말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니 아가가 비록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상호작용을 하는 느낌이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해'
남산만큼 부른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이런 저런 단어들을 외쳐대는 사이 둘째가 태어났다. 우리 아가는 이제 입이 트여가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가의 언어 공부보다는 신생아 케어에 주력해야한다니... 맥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불현듯 책을 읽어주는 방문 교육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네 군데 정도의 업체에 전화를 해 보았다. 대부분 아가의 수준을 알아야 한다며 시범수업과 상담을 겸했는데 책을 팔기 위한 전략이 내 성향에 전혀 맞지 않아 나는 아무 업체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코끼리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 낯선 사람에게 우리 아가가 '코끼리'예요 라고 말해줄 리가 없었다. 사실 이땐 '코끼리'발음도 잘 안되긴 했고. 30분정도의 진단동안 아가는 고작 '멍멍'이나 '꿀꿀'같은 말만 해 보였다.
"매우 심각한 수준이에요. 인지도 떨어지고 어휘수준도 너무 낮아요. 이런 경우 주 2회 수업을 하셔야 하고 전집은 4종류 정도 권합니다. 가격은 이 정도이고요."
언어능력은 낮지만 인지는 높다는 것이 엄마의 진단이자 자부심이었는데 '인지가 떨어진다'라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적잖이'라고 표현이 되지만 그 당시에는 나의 육아 방식이 우리 아가에게 악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육아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았다. 선배엄마들에게 문의를 해 보기도 하고 동네 엄마들에게 '객관적인 우리 아가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며, 그리고 재활치료를 전공한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도 하며 우리 아가가 그정도로 문제가 있는것인지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영업사원의 충격요법에 수많은 부모들이 지갑을 열었을테지만 내 지갑은 칭찬 속에 열리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계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영유아 검진 때 그랬듯, 우리 아가의 언어실력 향상을 위한 예상문제 집중풀이반을 계획하게 되었다.
내 방식대로 우리 아가를 수다쟁이로 만들어 낼 것이다.
보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