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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꿈 Dec 10. 2019

시간차 (조기)하원

아기들이 연달아 조퇴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잔기침을 좀 하는가 싶어 서둘러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약을 먹어야 할 수준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요즘같은 날씨에 감기를 초기에 잡지 않으면 폐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재빨리 때려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가방 2개, 이불가방 2개를 챙겨 아기들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운전 무능력자지만 병원을 하도 다녀 이 길은 이제 눈감고도 갈 수있을 것 같다. 병원 어플은 8시 30분에 열리지만 나는 8시 10분쯤 오프라인으로 접수를 한다. 이것도 아기가 둘이었다면 전혀 생각하지 않은 '쓸데없는 짓'이었을텐데 아기가 둘이 되다 보니 '자주하는 짓'이 되었다. 일단 두 아기가 내가 어플로 접수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8시 29분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30분 딱 되는 순간 접수를 해야 대기번호 10번 안에 들까말까인데 아기들은 자꾸만 29분쯤 응가를 하거나 다투거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만다. 잠시 지체하고 나면 병원 어플은 '오전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라는 야속한 문구를 내게 보여준다.


8시에 출발하여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10분이었지만 벌써 내 앞에 두팀이나 와 있었다. '두 팀 밖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두 팀 이나'이다. 8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진료시간 전 20분을 두 아가와 함께 기다리는 것도 버거운데 앞의 두 팀 덕분에 10분이 추가된다. 30분동안 우리 아가들이 덜 나댈 수 있도록 내 모든 에너지를 바쳐야한다.

대부분의 소아과에는 대기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이 있지만 나는 아가들을 그 공간에 들여보내지 않는다. '병원'이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아가들이 이용하는 키즈카페에서도 병을 얻어오는 마당에 병원의 놀이공간에서 새로운 병을 얻어온다는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그 놀이공간의 장난감 하나를 이용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놓는 것인가. 대기시간이 20분정도 지났을 무렵 우리 아가들은 꼬무작거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 편의점을 이용하기도 곤란하여 병원 안에 앉아 이야기나 나누고 있었더니 계속 그 놀이공간의 '빨강 버스'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극성엄마가 되어 그 빨강버스를 손소독제로 빡빡 닦아서 아가들에게 갖다 주었다. 배터리가 닳아 소리도 나지 않는 빨강버스 덕분에 그럭저럭 잘 버틴 후 아가들은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육아 4년차. 코, 입, 귀 사진을 보며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정도는 안다.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태였지만 의사선생님은 '심하지 않지만 약을 주겠다고'했다. 그리고 그 약으로 인해 비극이 시작되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서 약을 먹이고, 다시 소분하여 아가들 어린이집가방에 넣어 아가들을 등원시켰다. 그리고 약 10분 후 전화가 왔다.


"어머니, 행복이가 계속 울어요. 팔이 불편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팔이 빠진 것 같단다. 살면서 팔이 빠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팔이 빠진 것 같은 건 팔이 안 빠진 것 아닐까? 팔이 빠졌으면 확실히 알 것 같은데. 아무튼 아가를 데리러 갔다. 계속 오른 팔을 문지르며 불편해 했지만 누가 봐도 팔이 빠지진 않았다. 그런데 팔을 만지면 계속 울기에 하원을 했다. 이번에는 아침에 간 병원이 아닌 덜 인기 있는 병원에 갔다. 대학병원 과장까지 거치고 개원을 하셨지만 불친절하시고 약을 약하게 써서 이 동네 엄마들에게는 인기가 영 없는 병원이다. 그래도 많은 케이스를 경험한 의사선생님께 가는 것이 맞다는 판단. 여전히 불친절하셨지만 멀쩡하고, 혹시 계속 아파 하면 인대가 다쳤을 수 있으니 소아정형외과에 가보라는 말씀을 듣고 병원문을 나섰다. 혹시나 하여 옆에 붙어 있는 정형외과에 접수를 하였는데 아가가 갑자기 만세도 부르고 음악에 맞춰 춤도 췄다. 멀쩡해졌나보다. 병원 접수를 취소하고 근처 친정에 갔다.


"어머니, 꿈이가 등원해서 계속 피곤해 하더니 자고 있어요. 점심 먹을 때 깨워서 밥 먹일게요."


꿈이는 잠이 덜 깨면 밥을 먹지 않는다. 안먹어 출신이라 안 먹는 이유가 참 다양하다. 안 먹을 거라 예상을 하고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 꿈이가 이상해요. 계속 멍 하게 앉아있어요."

"네, 제가 갈게요."


선생님은 꿈이 잠 깨우기와 점심먹이기에 실패하셨다. 모두가 밥을 먹고 잠든 낮잠시간, 꿈이는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이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불러도 대답없는 꿈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다. 그리고 두 아가는 불타는 오후를 보냈다. 낮잠도 자지 않은 채 약 4시간을 불태운 이 두 아가는 갑자기 축 쳐져서는 귀가를 종용하였다. 그리고 목욕 후 6시, 엄마에게 조기 육퇴라는 선물을 선사하였다.

아무래도 약에 취한 것 같아 다음날 두 아기모두 복용을 중단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침콧물도 일체 없었기에. 괜히 병원에 다녀와서 애들만 잡았나 싶다.


이제 곧 어린이집 방학이 다가온다. 아기가 하나였을 땐 '방학'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엄마들이 좀처럼 이해가지 않았다. 아가와 함께하는 시간인데 왜 저렇게 싫어하지? 둘이 되니 500프로는 이해가 간다. 아기들이 싫은게 아니고 너무 힘들다. 몸과 마음이. 하나일 땐 그럭저럭 재울 수 있던 낮잠도 둘이면 버겁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느라 쉽사리 자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엄마에게 조기육퇴를 선물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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