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_ 이유 없는 떨림에 대하여

이유를 찾지 못한 마음이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시간

by Evanesce

Anxiety [ æŋˈzaɪəti ]

1. 불안(감), 염려

2. 걱정거리

3. 열망


가끔은 아무 일도 없는데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갑작스레 닥쳐오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유를 찾으려 해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어딘가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몸 안을 휘감는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괜히 거슬리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이 불편함이 되어 하루 종일 따라붙는다.


이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무언가 잘못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괜히 혼자서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날이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시계는 세 시를 가리키고 있고, 바깥은 조용한데 머릿속은 떠다니는 생각들로 시끄러웠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하지"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불안은 잠들지 않았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양을 바꿔 다시금 찾아온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된다. 어떤 날은 두통으로, 어떤 날은 피로로, 어떤 날은 분주함으로 변하곤 한다. 그 감정은 마치 얕은 물결처럼 우리 마음의 표면을 스치다가 어느 순간 밑바닥으로 내려가 버린다. 그러다 다시 이유도 없이 떠오른다.


시험을 앞두고는 손톱을 물어뜯기도 했다. 시험에 대한 걱정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모르는 문제는 반드시 나온다는 걸 이미 마음속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조바심을 내며 불안을 밀어내 보려 하지만, 사실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덮이기만 했다. 억눌린 불안은 잠시 사라진 듯 보이지만, 다시 느슨해진 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냥 그 감정을 그대로 흡수해 보기로 했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내가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오히려 완벽하게 평온한 마음의 상태는 모든 기대와 희망이 사라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말한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구나.' 그리고 그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노력해도 결론이 보이지 않고, 어떤 선택이 옳은지도 모를 때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기다림이라는 시간 속에서만 풀린다. 당겨도 당겨도 더 엉켜버리는 실타래처럼,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그냥 손을 놓는 것이 옳다.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그 실은 어느새 힘을 잃고 스스로 풀려 있거나, 더 이상 그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경우가 있기도 하다.


결국 불안은 우리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조절해 나가야 하는 감정이다. 없애기보다는, 그 안에서 단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유 모를 걱정이 밀려오겠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라고 말해 보자. 언젠가 이 시간조차 지나간다면, 나는 그 불안이 내 내면을 어떻게 다져놓았는지를 알게 되겠지.

keyword
이전 01화A _ 마음이 귀가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