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온기로 수습되어 가는 마음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약속된 일과를 해내고, 다양한 사람을 마주하며 웃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작은 상처들이 켜켜이 쌓이게 마련이다.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닳고, 어떤 날은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유 없이 공허함이 쌓인다. 세상은 우리의 속도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느라 하루 내내 마음이 닳아 버린다.
어딘가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끝을 맞이할 때의 피난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 누구에게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내 마음이 조금은 풀어져도 괜찮은 어떤 공간 같은 것.
그러한 곳이 물리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품, 그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함께 있을 때의 조용한 기류가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드는 어떠한 형태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곁에 있을 때 세상의 모서리가 조금은 둥글어지고, 내면의 긴장이 천천히 풀리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특별한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의 침묵 속에는 말보다 더 많은 이해가 담겨 있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을 때에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서 그저 곁에 있어준다.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길지 않지만, 그 짧은 순간이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물론 근본적인 혼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붙들어 준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 존재만으로 세상이 잠시 덜 차갑게 느껴진다.
이해받는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단지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사람을 다시 숨 쉬게 한다. 마음의 거친 부분이 조금은 부드러워짐을 느끼고, 굳이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무른다.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온다. 존재만으로 내가 다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어쩌면 안식처란 바로 그런 것이니까.
세상을 피해 숨는 곳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자리가 되어 주는 사람, 내가 지고 있는 무게의 방향을 잠시 바꿔줄 수 있는 사람, 그 미세한 온기가 내면의 소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다시금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세상은 언제나 여전히 각박하고, 내일도 또 비슷한 각박함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머무는 내 마음의 안식처를 통해 내 하루의 균형을 다시 세울 수 있게 된다. 아무 말 없이 내어준 마음의 자리에서 내 마음의 파편들을 천천히 모으고, 그 파편들 사이롤 흘러드는 조용한 온기를 느껴본다.
위로보다 더 조용하고, 사랑보다 더 오래 남는 그 온도 속에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있지만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은 그 자리에서 내 안의 무게를 가만히 내려놓은 채, 어느새 조금은 흔들림을 멈춘 그 또렷함으로 아주 천천히,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