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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_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 마음

우연이 삶의 결을 바꿔놓을 때

by Evanesce

Serendipity [ serənˈdɪpəti ]

1. 우연한 발견, 행운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얼굴을 지나친다. 대부분의 만남은 잊히고, 어떤 기억은 이름조차 남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아주 우연하게, 아무 이유도 없이 한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다. 설명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우연처럼 보이는 한 순간이지만, 어쩐지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 같기도 하다.


이전의 삶은 단정하고 조용했다. 감정의 결이 이미 닳아 있었고, 세상은 그저 기능적으로 흘러갔다. 낭만 같은 것은 잊고 지낸 지 오래였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기엔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익숙한 풍경 속에서 전혀 다른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그 빛은 어떠한 형태가 아니라, 그 존재가 만들어내는 공기의 온도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다시 깨어났다.


그때의 그 순간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지는 않았다. 다만 내 안의 방향을 조금 틀어놓았다. 무심하게 걷던 길 위에서 발끝이 아주 미세하게 다른 쪽으로 향하게 된 것처럼 이해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였고, 그 감정은 이름을 갖지 못한 채 내 안에 머물렀다. 그저 그것이 내 안에 '있다'라는 느낌만이 분명했다.


이런 순간은 흔하지 않다. 찾으려 하면 멀어지고, 기대하지 않을 때 불쑥 다가온다. 이러한 감정을 느낀 이후의 시간들은 특별할 것도 없는데 모든 것은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거리, 같은 계절, 같은 일상인데도 마음의 결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세상이 새롭게 바뀐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각도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을 말로 옮기기는 어렵다. 언어로 표현하려 애쓰는 순간 무언가 본래의 온기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좋다'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담아내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감정을 기억한다. 아마 그 침묵 속에 진짜 의미가 숨어 있을 테니까.


그 순간은 분명 내 안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오래된 고요가 다시 흔들리고 잊고 지내던 온도가 되살아날 때,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우연히 찾아온 발견'은 스스로도 몰랐던 내 안의 결을 깨닫는 순간이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연처럼 문득 마음이 반응하는 이유, 그건 아마도 내게 '아직 느낄 수 있음'을 속삭이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한 우연은 이름 없는 감정으로 남아 나를 되살린다. 굳이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그 뜻밖에, 아무 이유 없이 깨어난 그 마음의 순간은 이미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 어떤 향기, 어떤 빛, 그리고 어떤 익숙한 소리와 함께 그 순간의 공기, 그 순간의 온도, 그리고 나를 다시 데려오는 한 순간으로써, 그러한 운명의 형태로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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