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지 않기 위한 구부러짐
살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낄 때가 많다. 아침에 매일 마시는 커피, 출근길 플레이리스트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나오는 음악, 퇴근길을 마주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의 풍경은 거의 어제와 같고,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바로 그 반복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유지해 간다. 삶의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거창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소한 루틴, 익숙한 패턴,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Staple'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주된, 필수적인'의 뜻을 가진 그 단어처럼, 쌀이 한 나라의 주된 식량이 되고, 커피가 어떤 이의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듯, 우리의 삶도 각자 자신만의 중심을 가진 채 움직인다. 그리고 그 중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하루의 형태가 무너지고, 마음의 방향이 흐트러지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지탱하는 주된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거창한 꿈일 수도 있고,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습관일 수도 있다. 하루를 여는 문장의 첫 줄, 어릴 적부터 써 왔던 펜, 무심코 듣는 노래 한 곡 같은 사소한 반복들이 삶의 페이지를 하나로 묶어준다. 그 묶임이 느슨해진다면, 우리는 자신이 흩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Staple'이라는 단어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테이플러의 'ㄷ'자 모양 철사 침이다. 두꺼운 종이 뭉치를 하나로 엮기 위해 스테이플러로 고정을 하며, 작은 금속심이 구부러져 맞물릴 때, 우리는 그것을 '묶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묶임은 단단한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스테이플러 침의 구부러짐을 통해 완성된다. 한 번 구부러져야 종이들이 흩어지지 않고 서로를 붙잡은 채 한 덩어리가 되듯, 우리의 삶 역시도 그렇다. 우리의 중심을 만들어 주는 것들은 대부분 어딘가 조금은 구부러진 상태로 존재한다.
완벽하게 반듯한 질서가 아니라, 조금은 흔들리고, 때로는 망가져 있는 균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와 연결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처럼 만들어진다. 한쪽이 완벽히 펴져 있다면, 다른 쪽이 구부러질 틈이 없어서 맞물릴 수도 없다. 누군가가 조금은 낮아질 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다. 결국 구부러짐이 관계를 고정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묶임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 스테이플러 심을 펼칠 때, 그 뾰족한 끝이 손끝을 찌르기도 한다. 우리가 한때 가까이 묶였던 사람이나 기억을 떼어내려 할 때 느껴지는 아픔도 이와 닮아 있다. 묶였다는 것은 동시에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찔림조차,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고정시킨다. 어떤 이는 일의 규칙으로, 어떤 이는 감정의 리듬으로, 어떤 이는 글 한 줄로 자신을 묶어 둔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은 행위들이 삶을 흩어지지 않게 지탱해 준다. 이것이 바로 개개인의 하루를 하나의 형태로 유지시켜 주는 중심축이 된다.
삶의 질서는 커다란 결심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반복, 그리고 그 반복을 지탱하는 사소한 애착에서 비롯된다. 매일 아침 커피를 뽑아 마시고, 플레이리스트에 펼쳐진 노래를 고르며, 퇴근길 일상 속에서 사소한 행복을 찾는 일. 그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매일 조금씩 다시 묶이는 존재의 과정인 것이다.
스테이플러 심이 구부러지지 않았다면 종이들이 결코 함께 있을 수 없듯, 우리가 조금씩 구부러지고, 때로는 찔리며 살아가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 구부러짐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고정하고, 삶의 조각들을 하나의 형태로 엮어나간다.
결국 인간의 일상은 수만은 작은 staple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작은 고정점들이 모여 하루라는 두꺼운 묶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