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조건의 틈, 감정의 파편
모모코는 자신을 ‘평범하다’고 소개하는 데 익숙했다.
도쿄의 한 기업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장을 보고, 가끔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집에서는 고양이 두 마리와 시간을 보내는 삶.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흘러가는 하루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평범함’을 기대하면서도, 그 속에서 비범한 감정의 순간을 갈망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러웠다. 특히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더욱.
"일본 남자들은 너무 조용하거나 너무 바쁘거나, 아니면 너무 서두르거나 그래." 친구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모모코는 일본 남자랑 결혼 안 할 것 같아. 그런 얼굴이야."
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늘 자신이 뭔가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 누군가는 ‘좋아한다’는 말을 손을 잡으며 표현하고, 누군가는 긴 시선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모모코에게 감정은 형태가 없지만, 결이 있었다.
그 결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조건이 완벽해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껏 연애도, 결혼도 그녀의 인생에서 한 번도 ‘시작’된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한국 남자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기류 속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메시지 몇 개였다. "사진이 멋져요." "이 장소는 어디예요?"
건조하지만 예의 바른말들. 그러나 그 말들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
문장의 구조가 아니라, 그 문장이 전해지는 리듬이 달랐다.
류. 그의 말은 조심스럽고, 때로는 무심한 척하지만 어딘가 다정했다. 그 다정함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모모코에게는 더 중요했다.
"이 벚꽃길, 작년에 제가 걸었던 길과 똑같네요."
류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녀는 놀랐다. 같은 장소를 다녀간 적 있다는 사실보다, 그 기억을 감정으로 연결 짓는 방식이 그녀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 길, 저도 좋아해요. 걸을 땐 조용한데, 사진으로 보면 마음이 붐비는 느낌."
그녀의 답장에, 류는 오래된 책갈피처럼 말끝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사진에는 묘한 감정이 담기네요. 찍을 땐 몰랐던 것들이 나중에 보이죠."
그날 이후, 모모코는 류의 말속에서 이해받는다는 감정을 자주 느꼈다.
어떤 말은 이해하려 노력해도 다가오지 않지만, 어떤 말은 말하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속에 존재했던 것처럼 들어온다.
류의 말이 그랬다.
그녀는 국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과 한국. 가까우면서도 먼 두 나라. 익숙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더욱 뚜렷해지는 차이.
"한국 남자는 결혼에 적극적이지만, 그만큼 조건을 많이 따진대." 친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모모코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건으로 이어진 만남은, 감정의 파편을 남기잖아." "그걸 주워 모으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니까."
그녀는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의 시작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단지 외국인이기 때문에 관계를 환상 속의 이미지로만 상상하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천천히, 류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는 짧았지만, 문장의 잔향은 길었다.
그리고 그 잔향이 그녀의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녀는 가끔 류의 이름을 메모장에 써보았다.
모모코는 글자를 감각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행위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곤 했다.
류(柳). 버드나무. 흔들리는 나뭇잎, 유연함, 물결을 따라 흐르는 가지. 한자도, 발음도 마음에 들었다.
한국 여행 계획을 세운 것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었다.
벚꽃 시즌에 맞춰 친구와 함께 서울과 경주를 돌아보기로 했다. 한국어는 아직 어색했지만, 감정은 말보다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을 류를 통해 배웠다.
그녀는 아직 류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확신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에게 ‘의도’를 읽히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감정은 여리고, 아직 말로 꺼내기에는 무게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때로는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흐름이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면, 언젠가는 같은 자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
류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아도, 자신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어느 날,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말이 겹칠 그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그녀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 감정의 결이 맞는다면, 언어는 이미 필요 없는 단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