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그대가 없는 계절의 시작
가을은 늘 조용히 찾아왔다.
여름의 열기와 달리, 바람은 어느 날 갑자기 선선해졌고, 하늘의 색은 조금 더 깊어졌다.
나뭇잎은 가장자리부터 물들었고, 저녁의 그림자는 이전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
류는 어느 날,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은행나무 길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제 모모코가 한국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는 것.
이 계절이 오리라 예감했지만, 막상 그대가 없는 계절을 맞이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무겁게 스며들었다.
그리움은 늘 계절을 따라 자랐고, 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더 깊어지고 있었다.
모모코는 오사카의 한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한국은 지금쯤 단풍이 예쁘겠지..."
그녀는 스마트폰 앨범을 열어, 한국에서 함께 보았던 풍경들을 천천히 넘겼다.
경복궁의 한적한 정원, 한강변의 저녁빛, 함께 나누었던 커피의 온도.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분명 함께했던 감정들이 살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흐려질 줄 알았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수록, 추억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그리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류는 매주 주말마다 작은 메모를 썼다.
그 메모는 편지로 보내는 것도,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만이 아는 방식으로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교문 옆 단풍이 많이 물들었어요." "작년에 혼자 봤던 그 나무였는데, 올해는 함께 보고 싶었네요." "당신은 지금 어떤 색을 보고 있을까요?" "그 마음이 그립습니다."
이런 글을 몇 줄씩 적으며, 그는 견뎠다.
사람의 마음은 계절처럼 변한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찾아와도 그는 같은 감정을 품고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모모코에게서 문득 이런 메시지가 도착했다.
"류 씨." "가을이 오면 당신과 다시 걸었던 그 길을 꼭 걷고 싶어요." "함께 바라봤던 하늘, 벤치 옆의 작은 꽃, " "그리고 말없이 걷던 그 거리의 온도." "그 계절이 저를 한국으로 이끌 것만 같아요."
그 순간 류는 문득,
‘그리움’이란 단어는 계절의 풍경을 통해 더 깊어지고, 또 언젠가는 그 풍경을 따라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