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스며들다.

제18장. 다시, 여행처럼

by 슈우

1. 떠날 준비, 기억을 꺼내는 시간

모모코는 오래된 여행 가방을 꺼냈다.


한국을 다녀온 후 그대로 구석에 놓아두었던 가방이었다.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고, 천천히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에는 서울에서 산 작은 엽서, 이름 없는 골목에서 찍은 사진 인화본, 그리고 마지막 날 공항 근처 서점에서 구입한 한국어 동화책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그 책을 꺼내 펼쳤다.


책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간, " "그 자체가 사랑이다."


모모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류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번엔 관광이 아니라, 감정을 마주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2. 기억을 따라 걷는 발걸음

류는 주말에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에 서울역 근처로 나섰다.


이유 없이, 그저 발길이 이끄는 대로.


예전 모모코와 함께 걷던 길을 따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커피를 마시던 작은 로스터리 카페, 모모코가 스콘을 맛보고 감탄하던 조용한 베이커리,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걷던 한적한 공원 산책로.


그는 그 장소들을 하나하나 다시 밟았다.


마치 처음 오는 여행지처럼, 아니,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소처럼.


그날, 그의 걸음은 기억을 따라가고 있었다.


3. 출발을 앞둔 마음, 새로운 여행의 의미

모모코는 항공권을 예매한 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오롯이 ‘그 사람’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출국 전날 밤, 그녀는 일기를 썼다.


"나는 다시 여행자가 된다." "이번엔 당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


"익숙한 거리를 낯설게 바라보고, " "낯선 감정을 익숙하게 안아보기 위해서."


"다시, 여행처럼." "하지만 이번엔 당신과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쿄의 하늘 위로 밤바람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서 그녀는 한국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4. 메시지 하나로 흔들리는 감정

류는 그 주 평일 내내, 평소보다 일찍 잠들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모코의 SNS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었다. 그저 조용한 시간들이 흘렀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카톡 알림이 울렸다.


인천공항 입국장 "류 씨, 나 지금 도착했어요." "혹시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함께 여행해 줄래요?"


그 순간, 류의 가슴속 어디선가 무언가가 ‘톡’ 하고 부서졌다.


그리움, 설렘, 미련, 기대,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동시에 피어올랐다.


류는 숨을 한 번 내쉬고,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어디에 있어요?" "내가 지금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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