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말하지 못한 거리
서울역 인근, 오후 여섯 시.
회색 하늘 아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던 시각, 류는 마치 꿈을 꾸듯 빠른 걸음으로 공항철도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플랫폼 위에 서서 숨을 고른다.
그의 두 눈은 오직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던 그 순간—
사람들 틈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검은색 트렌치코트, 어깨에 흐르듯 걸쳐진 캐멀색 스카프,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는 눈동자.
모모코였다.
류는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한 채 멈춰 섰다.
모모코 역시 류를 발견했지만, 곧장 달려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정적 속에 서 있었다.
그 거리, 겨우 10미터.
하지만 두 사람에게 그 거리는 지난 몇 달간의 시간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 표현하지 못했던 순간들, 오해로 쌓인 감정의 무게가
그 짧은 거리 안에 고요히 스며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은 멈춘 듯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먼저 걸음을 뗀 쪽은 모모코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와 류 앞에 섰다.
입꼬리는 가볍게 올라가 있었지만,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류 씨."
류는 한참을 멈칫한 후,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 생각보다 더 반가워요. 진짜로."
모모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거리, 익숙한데 낯설죠." "우리 예전에 여기도 함께 걷지 않았나요?"
"기억나요." "저쪽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 했었고, " "저 건널목 앞에서 신호 기다리면서 같이 웃었죠."
"그때 말하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말해도 될까요?"
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나도요." "말 못 했던 게 많아요."
"서로 조금씩 말하지 못했던 게…" "이 거리를 이렇게 멀게 만든 것 같아요."
그 순간, 모모코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조심스럽게 감춰왔던 감정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낯설지 않은 거리,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길.
말하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말없이 걸으며 조금씩 되짚었다.
길가에 떨어진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그 틈 사이로 사람들의 소음이 지나갔다.
그 순간, 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거리, 다시 걷고 싶었어요." "이번엔, 같이 천천히."
모모코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엔 말하면서요."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그들의 발걸음은 그렇게 천천히 이어졌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 그 안에서 다시 따뜻해지는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