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연다는 건 몸과 마음 중 어느 쪽에 더 큰 의미를 두라는 것일까? 수련생들에게 “어깨를 열어요, 가슴을 열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나는 얼마나 열려 있나, 열린 사람인가?’하고 되물어보게 된다. 사람마다 외모가 다 다르듯, 내면의 감정과 기질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요가 자세 또한 개인의 몸 상태와 기질에 따라 느리게 진보하는 자세가 있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완성되는 자세가 있다. 내적 기질이 자세에 깊이 개입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나 할까. 이러한 사례를 토대로 수련과 수련생들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수련 상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슴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면에 쌓아둔 감정이 많다는 것,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기질과도 통한다. 내가 요가 수련을 하게 된 이유도 쉽사리 열리지 않는 가슴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다 웃고 있어도 나 혼자서만 웃지 못했으니까.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자신의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는 진지한 표정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오래된 사진 들 속에서 나는 늘 저 혼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첫 수련을 시작하기 전, 수련생과 상담을 하는데, 그러기엔 더 사적인 대화의 시간을 갖는 편이다. 왜 이 재미없는(?) 요가 수련이 하고 싶은지, 왜 지나치게 작고 아담한 이 요가원을 찾아왔는지를 비롯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 세계를 보는 그의 눈과 감정 상태를 짐작하게 된다.
완벽주의자적 성격의 소유자들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슴을 여는 자세들이 편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생애 첫 요가 수련, 단번에 비둘기 자세로 발목에 손을 걸기도 하지만 전굴 수련에서는 뻣뻣한 채 상체를 숙이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전굴은 쉽게 되지만 후굴은 시도조차 못 할 때도 있다. 타인의 자세와 비교하기보다는 자기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요가뿐 아니라 살아가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가슴을 열어요’ 다음으로 자주 하는 말은 ‘우리 다음 시간에는 조금만 더 겸손해지기로 해요.’이다. 수련 중‘겸손해지기’란 ‘숙이는 자세’를 말한다. 늘 그렇듯 두 경우가 다 내게 필요한 자세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Urdhva Dhanurasana)‘수레바퀴 자세(Wheel Pose)’는 꽤 어려운 후굴 자세다. 척추를 들어 올려 가슴을 완전히 열어 뻗치게 됨으로써 척추를 단련시킨다.
척추 근력이 약해 손목의 힘으로 들어 올리려고 하면 손목에 무리가 가거나 어깨와 목이 경직되기도 한다.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좋은 자세이지만 안정적인 자세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가 안내자가 이끄는 대로 일련의 기본적인 수련 자세들(고개 숙인 개 자세와, 고개 든 개 자세, 소 얼굴 자세 등)의 꾸준한 수련 이후 진행하는 게 좋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완전히 익히게 되면 자신의 척추 즉, 중심이 수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반면 초보자의 경우 바닥을 짚은 손목의 힘 조절과 불균형으로 인해 바퀴가 흔들리고 숨이 가빠지게 된다.
꾸준한 수련 이후 완성하는 바른 ‘수레바퀴 자세’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동시에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불러온다. 체질에 따라 땀이 적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자세 수련 이후 기분 좋게 땀을 흘리게 된다. 가슴을 열어낸다는 것, 즉 마음을 연다는 것은 감정적으로도 후련해지게 한다. 땀을 통해서 불편한 감정들을 내보낸다고나 할까.
가슴을 여는 자세를 수련할 때는 퇴보가 빠르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이라도 꾸준히 수련하면 느려도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두 배는 빠르게 뒤로 물러선다. 근육과 관절의 공간이 좁아져 어깨와 가슴이 뻣뻣해지는 것처럼, 사고와 감정도 유연성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유롭게 굴러가는 수레바퀴가 될 때까지 충분한 수련은 꼭 필요하다.
(왼쪽)6월에 출간 된 산문집 표지 / (오른) 방금 찍어 본 본문의 첫장
(왼쪽) 책 속 2장 <그래서 요가> 퍼플 컬러 속지 / (오른) 방금 찍은 브런치 업뎃 작업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