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요가 자세 : 사자 자세(Simhasana, Lion)

by 김윤선

여성학자 클라리사 P. 에스테스는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야성(野性)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감정적으로 어떤 증상들이 나타날까? 다음에서와 같은 감정, 생각, 행동 등이 나타나면 깊은 본능적 심리와의 관계가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여성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극도로 메마르고, 피곤하고, 허약하고, 우울하고, 혼동되고,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틀어 막힌 것 같고, 성(性)적으로 무감각하고, 무섭고, 망설여지거나 힘이 없으며 영감이나 신명이 나지 않고, 열의가 없고, 허무하고, 부끄럽고, 항상 울화가 치밀고, 걸핏하면 화가 나고, 앞이 꽉 막힌 것 같고, 창의력이 없고, 짓눌린 것 같고,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클라리사 P. 에스테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루)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책 사이에 오롯이 존재하는 에너지가 있다

사실 이 글은 시인 김승희 선생의 책을 읽던 중에 만났다. 시집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를 귀를 접어가며 읽던 때라 그랬을까? '나는 아직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대학 도서관에서 단 한 권뿐이었던 책을 대출해 손에 쥐었을 때, 내 가슴은 엄청나게 뛰고 있었다'라는 선생의 글을 보자 내 가슴 또한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처음 봤을 땐 강렬한 푸른빛의 표지가 눈에 띄는 남다른 책이었다. 한 장 한 장 펼쳐 읽을 때마다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페미니즘 접근을 신화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신선했고 이야기가 아름다웠다. 흑석동 언덕길 인쇄소에서 두 권을 제본해 소설 쓰는 친구와 한 권씩 나누며 좋은 작품 쓰자고 결의했지만 현재는 꽤 오랫동안 책장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여성 속의 야성은 긍정적이며 태양의 축복을 느끼게 해 준다. 직관의 힘으로 빛나며, 유연하고 관대하다. 자연에 순응하되 운명을 거슬러 개척하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이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요가 수련 전 이 책을 알게 되었음에도, 이 한 문장이 오랫동안 내가 이 책과 함께한 이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은 요가 자세인 ‘사자 자세(Simhasana, Lion)’에서 문득 그 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른 자세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메시지가 이 책의 주제와 겹쳐져 보였고 수련 시간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건강한 야성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었던 거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요가인의 얼굴이 될 때까지 얼굴 근육을 쓰는 걸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사자처럼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혓바닥을 늘어뜨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지만, 하다 보니 차츰 편해졌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이 가짜가 아니듯이 이 모습 또한 본래의 내 모습이니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체중을 하체 즉 허벅지와 복부에 두고 척추를 바로 세운 채 양 무릎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 가슴을 펴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사자처럼 포효한다. 타인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엔 그저 포효할 뿐이다. 있는 힘껏 혀를 내밀어 턱 아래로 늘어뜨리며 요가실이 떠내려갈 듯 소리를 지를 때는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소리도 들려온다.


눈치 보는 게 더 익숙한 어떤 수련생은 소리를 속으로 삼키기도 한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크게 내기 시작한다. 숨은 깊어지고 소리도 점점 커진다.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소리도, 모습도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기분 좋은 미소도 번져간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얼굴의 탈코르셋, 숨어 있는 건강한 야성과 용기를 꺼내오는 자세라고나 할까? 자유로움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기분 좋은 일탈의 자세이다.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봤다. 본래 가진 건강한 야성을 찾는 자세라고. 아주 가끔씩이라도 다 같이 사자처럼 포효해보자!

* 탈코르셋: 코르셋(몸매 보정 속옷)에서 탈피한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한 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짙은 화장이나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업데이트 직전 본문 사진 한 컷


참고 : 책 속 '요가 자세'들을 '일러스트'가 아닌 '실제 자세 사진'으로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의 의견에 공감하며 일부 발췌하여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책 전문을 원하실 경우 출간 책 <감정 상하기 전, 요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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