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자세 ‘비라바드라 아사나 Virabhadrasana’라는 '전사 자세' 속 신화는 흥미롭다. 인도의 왕 닥사는 사랑하는 딸 샥티가 자신이 싫어하는 시바*와 결혼하자 몹시 실망하고, 급기야 딸에게 감당하기 힘든 심한 압력과 모욕감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결말은 전형적인 남성 주도권 위주의 사고에서 비롯되어 폭력적이고도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시바가 아내 샥티의 죽음에 몹시 진노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땅에 던져버리자, 그 머리카락에서 ‘비라바드라’라는 영웅이 나타난다. 시바는 머리카락에서 탄생한 비라바드라에게 명령을 내린다. 당장 군대를 이끌고 가서 장인 닥사와 그의 군대를 남김없이 파괴하라고. 용맹한 전사 비라바드라가 이끄는 시바의 군대는 폭풍처럼 몰려간다. 그리고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닥사의 제단을 부수고, 몹시 사랑했던 여인의 아버지인 닥사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늘 수련하는 전사 자세에 얽혀 있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시바 신의 엉킨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영웅 ‘비라바드라’의 이름을 붙인 게 재밌게 느껴졌다. 머리 위로 곧게 뻗어 올리는 두 팔의 모습이 칼을 치켜든 전사의 모습을 닮은 전사 자세. 전사 자세 수련을 하다가 종종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듣는 학생들도 나도 강건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미국에서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들을 때 이 자세에 관한 일화가 있다. 당시는 영어 수련 지도 실습에 스트레스를 받던 때였다. 몸의 움직임이 마음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런 연결과 흐름을 이끌어내려면 섬세한 표현들을 써야 했는데,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지금 같으면 한국말로 자신 있게 수련 지도를 했을 텐데, 그때는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나는 때때로 의기소침해져서 왜 여기까지 와서 언어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요가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는지 후회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 지도 실습 시간에 무심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언어의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문법에 묶여 너무 조심하지 말자. 시를 쓰는 사람답게 자세와 자세의 연결 과정을 라임이라 여기고, 그사이에 여백을 줘보자. 그들이 알아듣든 그렇지 않든 그건 그들의 몫이다.’
마치 ‘자신감을 가져, 한국 사람이 영어 못하는 거 당연한 거 아냐?’ 같은 영어공부가 싫은 자의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때 내 위축의 원인은 외부에서 온 게아닌 내부에서 스스로 지어낸 ‘생각’ 때문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끝없이 남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타인의 눈앞에 비칠 실수를 두려워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특별한 전사입니다. 머리 위에 푸른 하늘, 구름이 흘러갑니다. 당신은 대지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머리 위로 대양과 바람…… 당신은 대지의 에너지를 받아 이제 더는 약하지 않습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당신이 바로 중심, 당신은 전사입니다.”
“From now on, you are a special warrior. The blue sky over my head, the clouds. You stand on the earth, the ocean and the wind above your head— You are no longer weak with the energy of the earth. “You are the center of the elegant and beautiful, and you are a warrior.”
호흡과 자세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빈야사 Vinyasa 시퀀스 Sequence’* 실습 시간, 시를 낭송하듯 행간의 여운을 살려 느릿느릿 입을 떼기 시작했다. 영어권 지도자 과정 동기들의 자세 지시와는 사뭇 다른 지도법이었다. 나는 총감독인 글로리아에게 “시인 니콜의 지도 방식이 창조적이다. 낮은 목소리가 명상에 도움을 준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날 지도자 과정 워크숍 후 총평의 자리에서 한국에서 온 나의 지도 방식에 대한 평
가는 오랜만에 만족스러웠다.
살다 보면 위축되는 순간들이 온다. 뜻대로 안 되기도, 심지어 오해를 받기도 한다. 때에 따라 주어진 일보다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병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강요되는 경쟁과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구조의 탓이기도 하다.
맨발로 매트 위에 올라가 ‘호흡’과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밖을 향해 뻗어가던 생각들이 안으로 방향을 바꾼다. ‘비라바드라 아사나’가 포함된 ‘태양 예배 자세’를 거듭 수련해나갈수록 움직임이 가볍고 부드러워진다. 손끝으로부터 발바닥, 발바닥이 딛고 있는 그 아래 대지에 이르기까지 연결된 힘을 느끼게 된다.
‘현재의 운명에 불만을 품지 말고 미래에 위축되지 말라’는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속 지혜 어록이 온전히 와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 모두 견뎌내야 할 자기 몫의 슬픔과 화가 있다. 미처 몰랐던 강박이나 욕망이 각각의 문제를 안고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오직 나에게만 ‘취한 코끼리’나 ‘상처’가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을 훌륭한 도구로 삼을 때까지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걸 수련 안내자로 살며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요가 수련을 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현재라는 매트 위에 담담히 올라서는 일이다. 더구나 비라바드라 아사나 수련을 한다는 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악마의 머리를 밟고 우주의 춤을 추는 시바 신의 강력한 에너지와 로마 황제의 지혜가 시공을 초월해 지금 내 안으로 들어와 에너지의 발원으로 재탄생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세상 밖 스트레스가 군대처럼 나만을 공격해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강력한 영웅 비라바드라를 깨우기를 권한다. 당당하고 우아한 전사가 되어 본래의 내면에 깃든 당신의 아름다움 안에서 우뚝 서게 되기를 바란다.
업데이트 직전, 실물 책과 함께
참고 : 책 속 '요가 자세'들을 '일러스트'가 아닌 '실제 자세 사진'으로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의 의견에 공감하며 일부 발췌하여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책 전문을 원하실 경우 출간 책 <감정 상하기 전, 요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