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보통 같으면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캣글라스 좋아하는 고양이 메르씨군에게 이번엔 실패하지 않고 쑥 쑥 싹이 올라오기 시작한 캣글라스도 보여주었다. 다가올 가을날이 아무리 좋아도 저를 외롭게 두고 놀러 다니지 않을 거라는 집사의 의지도 충분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어제 길고양이들 밥도 주었기에 오늘은 당번으로부터 자유로운 날이다.
이렇듯 채비를 단단히 한 후 카페에 나간다고 해서 결코 대단한 글쓰기의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집을 나서야만 비로소 집안일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러 나간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두 군데인데 한 곳은 집에서 조금 멀고, 한 곳은 가깝다. 조금 먼 곳의 카페 가는 길은 맨발로 걷기에 좋은 천변 흙길이 있기에 늘 카페를 나와 집으로 올 때 걷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는 길이 아닌, 가는 길부터 맨발 걷기로 시작했다.
여기 천변에서의 어씽Earthing에는 산길, 황톳길과 다른 아픔이 따라온다. 한 바탕 비가 오고 난 후는 정도가 심해져서 빗물에 씻겨간 흙길 아래에는 온갖 종류의 자갈들이 가득하다. 그 속에는 아주 작은 조개껍질도 있고 깨진 푸른 술병의 조각도 섞여있다. 처음엔 저절로 움찔거릴 수밖에 없는 길이였는데 이제는 그 자극이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하지만 여전히 아프다)
이렇게 아픈 길을 잘 견디며 심지어 즐기며 걷다 보면 부드러운 모래길이 나온다. 뙤약볕 아래를 걷다 보면 시원한 나뭇그늘길이 나온다. 메마르고 단단한 길이 끝나고 나면 부드럽고 축축한 길도 나온다.
오늘은 문득 이 길지 않은 길을 걷는데 꽤나 심오한 인생의 교훈을 새기게 된다. '그렇지, 살아온 나날들도 그랬지'. 그와 함께 지금 걷는 이 길 속에서의 순간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생각이 드는 거였다.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담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오늘 걷는 길이 너무 거칠고 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그게 큰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반짝이며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무장한다면 우리의 날들은 위대할 것이고. 그거면 충분할 테니까.
새삼 또 느끼게 된다. 집을 나서야 한다. 걸어야 한다. 특히 맨발로 흙을 느끼며 걸어야 한다. 지구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걸어야 한다는 것을. '지혜와 사유'는 결코 머리로 오는 게 아니다. 빗속의 흙과 자갈길을 걸어온 내 발바닥의 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그런 생각을 오늘 저녁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