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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Oct 12. 2023

CU에서 '바유'!

편의점에 들어간 비건 이야기 

  지난봄이었다. 비건은 물론 비건 지향인들 사이에 ‘식물성 바나나맛 우유’를 먹어봤다는 인증샷 업로드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그 바나나 맛 우유가 비건으로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니 반가운 마음 가득이었다. 10년 전에 비해 비건 인구가 10배 늘었다는 소식이 비로소 실감되었다. 내가 막 비건을 시작했던 2009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올라오는 리뷰들을 보는 것에 만족,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진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통통하고 귀여운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를 즐기던 때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 시절 목욕탕에서 막 나와 마시는 달콤하고도 고소한 바유*를 마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지 않은 기간 비건 생활방식으로 살며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속세의 그 맛! 실제 바나나가 들어있을까, 아닐까를 잊게 만드는 중독성 그 맛 말이다.     

 

  더는 꾸물거릴 이유를 찾지 못한 어떤 날 나는 드디어 편의점으로 갔다. 인기가 많아 운이 나쁘면 살 수 없다는 비건 바유를 첫 번째 들어간 곳에서 살 수가 있었다. 그것도 1+1 행사로 하나 값에 두 개를 받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습관처럼 집어 드는 군밤과 함께 어렵지 않게 편의점 비건 디저트를 즐긴 날이었다. ‘아니 세상에 그 귀엽고도 고소한 소이와 아몬드로도 비건 인증*까지 받은 바나나 맛 우유를 만들어 내다니!’ 

  그러고 보니 편의점에 즉석 비건 식품이 등장한 것이 바나나맛 우유가 처음은 아니었다. 비건 김밥과 비건 버거가 나왔을 때도 많은 비건 인들은 릴레이를 하듯 시식의 행렬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비건 바나나 맛 우유에 대한 반응이 더 열광적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아마도 1974년 출시된 이후 그 모습과 맛을 지켜낸 고유한 정체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편의점 도시락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새로운 비건 채식 제품  나온 게 없나 '포켓 CU'를 열어보니 몇 종류의 비건 간편식들이 떡하니 나와 있었다. 내 취향에는 우선 ‘채식 모타델라 루꼴라샌드위치’가 궁금했고 다음으로는 ‘채식 카츠 김밥’이었다. 하지만 픽업할 곳을 둘러보는 그 사이에 품절로 뜨는 곳들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집 근처 편의점을 벗어나더니 재고가 남아있는 먼 동네로 안내해 주는 게 아닌가. 경쟁률이 꽤 높은 채식 신 메뉴들이었다.    

  

  편의점은 일종의 잡화상이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늘 준비되어 있다. 나는 거기서 머리끈도 사봤고 스타킹도 사봤다. 그뿐인가? 짠 내 나는 성공담 속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삼각 김밥’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렇듯 고객의 편리를 위해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 어느 사이 우리들 생활 속으로 들어와 동네 사랑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기후 위기’의 시대다. 모른 척하기에는 심상치 않은 상황 속에서 인류가 풀어야 할 정체절명의 숙제 앞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쉽고도 효과적인 실천방법 중 하나로 비건 채식을 꼽기도 하는 이 시대. 미래지향적이며 바람직한 변화라는 생각이다. 개인의 형편과 신념에 따라 비건과 채식을 선택하거나 지향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기왕이면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도 할 비건 채식 사업이 수익을 많이 냈으면 좋겠다.  지속가능한 지구와 함께 살아갈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 환경과 먹을거리를 연결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고무적인 건 편의점 또한 단순한 잡화상 그 이상의 역할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배고픈 비건 Vegan이 편의점에 들어가 사 먹을 수 있는 게 군밤과 일부 음료로만 한정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비건인 및 비건 지향, 채식에 관심 있는 이들 모두가 필요할 때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 먹고 싶은 것들을 고를 수가 있게 되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아쉬운 점 하나, 아니 부탁을 남겨볼까 한다. 재고로 남을까 염려가 되는 점주님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포켓 CU를 통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예약 구매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구입하려던 비건 제품들이 금세 품절되는 경우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여느 편의점에서는 ‘비건 신제품’은 물론 ‘비건’ ‘채식’ 제품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내가 어느 날 문득 CU에서 마주쳐 ‘비건 바유’를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키면 ‘비건 초코볼’까지도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피곤해서 저녁밥하기 싫은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채식버섯잡채’와 ‘채식만두’ 한 봉투씩도 사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의의 시대인가. 써놓고 보니 ‘편의점 예찬’에 가까워 보인다. 비건 생활 14년 차에 최근 들어 자연 식물식을 선호하는 취향과 다소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에 비건 채식들이 넘쳐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편의점을 예찬할 용의가 있다. 더 나아가 비건, 논 비건 친구를 가리지 않고 불러내 완벽한 ‘비건 한 끼’를 함께 할 의욕으로 충만하다.    


CU에서 새로 출시된 채식주의 제품들 


*비건 : 동물로부터 오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은 물론, 입고 바르고 쓰는 생활용품의 선택까지 동물착취로부터 온 모든 것의 소비를 지양하는 생활방식을 말함

*바유 : 바나나 맛 우유를 두 글자로 줄여서 부를 때 씀

*비건 인증 : 동물 유래 원재료를 사용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교차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제품에 동물실험을 실시하지 않는 기준으로 부여하는 인증제도. 까다로운 인증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세부 원재료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며,  비건 제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생긴 제도. <한국 비건 인증원> 이 있다.               



CU에서 발행하는 웹 매거진 BGF라이브 10월호에 에세이 한 편이 실렸습니다. 글을 쓰며 그동안 CU가 편의점 채식 간편식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이번에 나온 게 7탄째라는데 저는 저중에서 한 가지를 먹어봤고, 내일 두 종류를 먹어 볼 예정입니다.  다 먹어본 리뷰는 차츰 올리도록 할게요. 참 루꼴라 샌드는 빵부터 완전 비건식으로 맛도 가성비가 아주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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