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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Sep 16. 2023

추석에'임무해제'될 생명들을 추모하며

책 '기억 전달자' 속 들여다보기  

  

  최근에 읽은 책 <기억 전달자> 속 '임무해제' 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처음 이 단어와 마주했을 때만 해도 설마, 그게 그런 의미일 줄 몰랐었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거니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끔은 낙관론자가 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아갈 온전한 미래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라는 것에 대해 비관론적 시각의 소유자이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도리없이 기성세대인 나로서는 후세대들에게 면목없고도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구인들이 여전히 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껏 누려온 지구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희망은 없다고 본다. 당연한 듯 착취와  도살을 이어나간다면 우리가 누릴 안온한 미래는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내친김에 '임무해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작전 부대가 그 부대의 장비 고장과 관계없이 장비의 정기 점검을 위하여 전투 임무에서 자유로워진 상태[ Mission Release , 任務解除 ]'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책 속에서 '임무해제'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온난화 이후 전쟁과 기아로 멸망했던 인류는 종족 보존을 목적으로 개성이 묵살된 통제와 중앙집권 체제의 시대를 맞이해 살아가게 된다. 언어, 이동 수단, 직업, 가족 구성원, 수명 그리고 기억조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누군가(일종의 지배계급)에 의해 조정되는 사회가 등장하는 것이다. 책 속에서 '임무해제'에 선택되는 인간군은 사회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고유한 생명체로써의 존엄과 개체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냉담한 사회구조다.

 

  9월도 중순,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은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을 맞이하는 인간의 명절이자, 다량의 '정육선물세트'가 되기 위해 수많은 소와 돼지들이 죽어가는 때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일어난 '임무해제'중 가장 잔혹하고도 비열한 장면은 주인공소년의 아버지인 보육교사가 벌이는 영아살인의 현장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완벽한 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불편한 진실을 감추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 맘 때가 오면 살의 무게를 돈으로 환산해 받고 도살장에 보내기 전까지의 소와 돼지들은 특히 더 많은 먹이를 먹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그 어떤 이유로 예고 없이 '임무해제'되는 인간의 경우와, 고기로 환산되어 '임무해제' 되기 전까지의 사육장 동물들이 있다. 둘 사이가 묘하게 닮아있음을 보게 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행성에 내린 지구 생활자들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 지붕 한 가족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다른 또 다른 지구 생활자들을 착취해 온 역사는 꽤나 길게도 이어져왔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인간들은 지구 위의 다른 생명들을 지배하고 소비하고 나아가 착취해 왔다.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고도 마땅한 누림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도 그랬다.  

  

  책 속에서 '임무해제'를 앞둔 살만큼 산 노인들에게 사회는 성대한 잔치를 열어준다. 잔치가 끝나면 노인들은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어떤 곳을 향해 '문' 밖으로 조용히 사라져 간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존재하는 '삶과 죽음'의 철학적 의미도 책 속에서 풀어볼 만했다. 그러다 문득 폴 메카트니가 한 말도 생각난다. "만약 도살장이 유리벽으로 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들의 고통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 또한 동물에 대해서 더 자부심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과 '들여다볼 수 없는 문'의 존재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말이다. 


  Kez 덕분에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 전달자, The Giver'>를 읽게 되었다. 아동. 청소년 문학상의 노벨상에 버금간다는 뉴베리 상을 두 번이나 탔는데 그중 한 번이 이 작품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의 번역자는 책 말미에 '또 하나의 걸작 미래 소설'이라 명명을 했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 밖에도 여러 권위 있는 매체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미국에서만 350만 부나 팔려나간 슈퍼베스트셀러로였다고 한다.


  이틀을 묵혔다가 집어 들고 난 후로는 하루 만에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는데 마음 한편 저쪽 에이 저릿해진다. 이것은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작가가 설정해 낸 가상의 세계이건만 그 세계 속에서 작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 것만 같았다.

왼쪽: 도살장으로 향하는 돼지들의 첫 외출 공기냄새를 맞는가보다/ 오른쪽: 추석을 맞아 도살장으로 향해 늘어선 차량 행렬(사진 속 사람들은 비질visil 중인 활동가들 모습

  나는 하필이면 왜 이 위대한 작품 속에서 '임무해제'라는 이슈를 꺼내와 '도살장으로 향할 동물들' 곁에 두어야만 했을까. 책 <기억전달자>를 이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기억, 행복, '슬픔'과 '고독' '아름다움' '사랑' '비거니즘' '사회'를 비롯한 심도 깊은 주제들을 심도 깊게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이 맘 때가 다가오면 이제 곧 '임무해제' 될 동물들이 겪게 될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떠오르곤 한다. 이렇게라도 잠시나마 추도의 마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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