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선 Nov 03. 2023

미스터리

좀도둑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경계심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 무얼 잃어버려 난처했던 기억은 잘 떠오르질 않는다. 이런 나의 자부심(?)을 졸지에 깨버린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출할 때면 '방해하지 말아 달라' 는 목각 팻말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나가곤 했다. 내 맘대로 늘어놓고 사는 현장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데다 쓰레기도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팻말이 걸리면 직원들은 내 숙소에 들어올 수가 없기에 잔잔한 내 빨래들을 해서 욕실에 널어놓았다. 해가 잘 드는 테라스에는 내가 쓴 면이 두꺼운 수건을 널어놓고 나가는데 돌아오면 세탁한 것처럼 쨍쨍하게 말라있곤 했다.  

  

  다른 날과 달리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청소가 좀 되어있으면 좋겠다 싶은 날이었다. 팻말은 걸지 않았지만 잔잔한 빨래 한 장을 말려야 했기에 욕실에 널어놓고 대신 깨끗한 넓은 수건으로 덮어놓았다. 나로서는 일종의 가리는 용도일 겸, 건들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예상했던 대로 입구부터 말끔해진 느낌이 들었다. 유리창까지 닦았는지 논뷰가 비쳐 거 울오 같았다. 수납 바구니에는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새 수건들이 채워져 있었고 초록 나무가 보이는 창 옆 욕조 또한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였다. 비워진 휴지통도 공간에 스며든 아로마테러피 향도 다 다 좋았다.


  그런데 잘 감추어 널어놓고 나간 속옷 한 장이 없어졌다. 속 옷은 없는데 그걸 덮었던 수건만이 얌전히 걸려있다. '아 , 참 이게 뭐람' 한동안 난감했다. 청소하는 직원들은 거의 젊다 못해 앳되어 보이는 현지 젊은이들로 추측이 되었는데(그동안에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 말이다. 내가 이걸 클레임을 거는 순간 이 문제는 '왈가왈부'가 될 것이고 어쩜 그러노라 더 불쾌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희한한 일이다. 뭐 이런 이상한 드라마 속 같은 시추에이션이 내게 일어나다니. 

'도대체 왜?' 아주 잠시 궁금하기도 했지만 잠시 민망해하다 그냥 웃고 말기로 했다. 여기서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9시면 천장 위로 빼꼼 나타났다 제갈 길 가는 도마뱀과도 반갑게(?) 인사 나누는 사이가 아니던가? 


  여기 지나치게 매력적인 동양여성 여행자가 있다. 게다가 그녀는 혼자서 여행을 한다. 게다가 아주 단순한 일정으로 로컬을 어슬렁거린다. 한가해 보인다. 그래서 생긴 일일 것이라 치부해 버리기로 했다. 다소 뻔뻔 하달 수도 있지만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처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09화 짙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